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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주소 표기 변경 유감 / 박창식

등록 2011-08-15 19:28

서울 송파구 오금동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도망가던 인조가 잠시 쉬면서 “오금이 아프다”고 해서 오금동이 됐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은 야전사령관인 체찰사 집무실이 있던 곳이라서 체부동이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은 서해 소금을 배편으로 운반해 창고에 보관했다고 해서 염창동이다. 땅이 기름져 벼가 잘되는 마을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이고,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솔안말’로 불리다 송내동이 되었다. 이렇듯 동네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역사성과 문화, 자연 특성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개념이다.

행정안전부는 기왕의 지번을 버리고 도로 이름 중심의 새 주소 표기 방식을 지난달 29일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오금동은 동남로가 되고 염창동은 공항대로, 화곡동은 가로공원로로 바뀌었다. 동네 이름에 얽힌 기억과, 전통, 역사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리는 게 무엇보다 문제다. 동네 이름이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문인들은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 같은 작품은 더 이상 창작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대신에 이상한 이름을 짓기도 한다. 인천 서구가 고시한 청라지구의 도로 이름 주소는 ‘크리스탈로’ ‘사파이어로’ ‘에메랄드로’ ‘루비로’ 등 외국어 일색이다. 외국어를 써야 세련된 인상을 풍겨 집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있어서라고 한다.

한국문화정책연구소(www.chpri.org)는 주소 표기 변경 반대 토론회 자료집을 누리집에 올려 두었다. 전통문화, 문예창작, 행정 합리성, 비용 대비 효과, 인지공학, 우리 말글 지키기, 부동산값 등 여러 측면의 논점을 풍부하게 다뤄, 지적 흥미를 충족시키는 맛도 있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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