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화산 폭발, 지진해일(쓰나미), 눈사태 등 대규모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어서 예보와 피난이 최선인 경우가 많다. 산사태는 진흙이 포함된 지질의 경사면에 많은 비가 내려 물기를 머금고 무거워진 흙더미가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중력에 따른 현상이다. ㎥당 2t의 무게를 지닌 진흙더미가 초당 14m에 이르는 빠른 속도로 덮친다. 눈 깜짝할 새 진흙에 파묻히지만 매몰이나 붕괴 사고와 달리 생존 공간을 거의 남기지 않아, 인명 피해가 크다.
미국 정부는 1970년대부터 ‘산사태 경고 프로그램’(Landslide Hazards Program)을 운영하며 대비해오고 있지만, 연평균 산사태로 25명이 숨지고 10억~20억달러의 피해를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6년 강원도 인제·평창에서 62명이 숨진 게 대표적인 산사태 인명 피해다. 산이 많은 국내에선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드물지 않아 나무를 심고 소규모 댐을 만들며 대비해왔다. 지질연구 분야에서는 최근 항공사진, 감지시스템 등의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인해 산사태 탐지와 예보 능력이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것은 이례적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난 것은 처음이다. 지표면 대부분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거대도시에서 숨통 노릇을 하던 해발 293m의 야산이 진흙더미 날벼락으로 쏟아진 것이다. 막개발로 인한 인재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멀쩡한 한강다리의 교각도 헐어버리고 조명과 분수로 요란함을 보태며 인공섬까지 만들어 한강에 띄우는 치장으로 ‘물의 르네상스’를 과시하려던 서울시다. 서울은 ‘거대도시 산사태’라는 원시적 인재로, ‘서울과 물’의 관계를 안팎에 널리 알리고 말았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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