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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 / 백기철

등록 2011-07-13 19:03

백기철 정치부장
백기철 정치부장
노무현 이후의 한국 정치는
정책으로 말하는 진보, 집행력을
갖춘 진보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의 <운명>을 읽으며 노무현 이후의 한국 정치를 다시 생각했다. 2년 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보면서 그가 떠난 이후의 한국 정치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의 죽음이 한국 정치에서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엔 막연히 노무현 이전과 이후의 한국 정치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때때로 이 의문에 사로잡히곤 했다.

1년여 전,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쓴 <운명이다>를 읽으면서 노무현의 필생의 과업이 지역주의와의 싸움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3당 합당이 그의 정치인생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으며, 3당 합당으로 상징되는 지역주의, 맹주 정치, 패거리 정치에 대한 저항이 노무현 정치의 열쇳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이광재·안희정·김두관이 거둔 성공은 노무현의 이런 분투를 국민이 알아준 탓이리라.

이번에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선 노무현이 10년 민주정부의 한계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 변호사는 다소 무미건조한 어투로 자신이 겪은 노무현 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적어 놓았다. 노무현이 세상을 뜬 지 2년 세월이 흐르면서 진정성만으론 진보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진정성이 있다 해도 정책과 비전, 실행력이 없으면 국민이 외면하고 만다는 것을 노무현은 죽음으로 웅변한 건 아닐까.

한국 정치에서 노무현이 남긴 족적 중 하나는 대의를 위해 최후까지 헌신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남 탓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고스란히 떠안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는 보여주었다. 노무현이 비록 실패했지만, 국민이 그의 진정성을 알아주는 이유다. 진정성조차 없는 정치는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알아본다는 것 또한 노무현 이후 분명해지고 있다.

진정성, 혹은 운동가적 소양으로 정치를 하는 시대도 노무현과 함께 끝이 났다. 노무현 이후 한국 정치는 정책으로 말하는 진보, 집행력을 갖춘 진보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의 카르텔에 단순히 부딪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이 카르텔을 해체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정책으로 관철할 수 있는 단일·연합대오의 진보정치 시대가 노무현 이후의 한국 정치상 아닐까.

친노를 대표하는 유시민과 문재인이 노무현 이후를 어떻게 꾸릴지도 관심사다. 책을 통해 본 유시민은 무언가 꽉 차 있는 듯한 정치인이라면, 문재인은 비어 있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유시민은 최근 발간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보여주듯, 현재의 한국 정치 수준을 뛰어넘는 영감 있는 정치인으로 다가온다. 문재인은 ‘impeached’(탄핵당하다)란 영어 단어를 잘 몰랐다고 써놓은 데서 보듯, 담백한 이미지로 남는다. 노무현이 생전에 누구를 팔아 정치를 하지 않았듯, 친노 인사들도 제 힘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길 바란다. 물론 노무현 이후 진보정치의 주역이 친노 인사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노무현 이후 한국 정치의 최대 특징은 각성한 유권자의 힘이 정치를 밀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점이 아닌가 싶다. ‘별일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장삼이사들의 저 밑바닥에는 노무현 이후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4·27 재보선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보듯, 이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분명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제각각의 분노와 아픔을 합리적 선택으로 승화시킨다. 진보든 보수든 이들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이들의 힘이 결국 한국 정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할 것이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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