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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완장 찬 교육권력자들

등록 2011-07-11 19:02수정 2018-05-11 16:15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오늘 다시 초6, 중3, 고2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다. 엠비 정권이 들어선 뒤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 개선,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마련, 평가방법 발전 등을 목적으로 내세우지만, 모든 학생과 학교를 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 실제로 학생들은 국어, 수학, 영어 등 과목별로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의 4단계로 분류되고, 각 학교는 응시 현황과 교과별 성취 수준을 보통학력 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의 3단계로 나눠 공시해야 한다. 모든 학생과 학교를 단계로 분류하고 줄 세우는 것, 이것이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면 1~3%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표집 학업성취도 평가로도 충분한 일을 전체 학생 대상의 일제고사를 치르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일제고사에 대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을 비롯한 엠비 정권의 교육권력자들의 완고함에는 완장 찬 자들의 마초적 즐거움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 보잘것없는 권력을 즐기는 완장 정신이 교육정신을 압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일제고사가 되살아나면서 평균 까먹는 학생들 배제하기, 성적 조작, 토·일요일 등교시키기, 문제풀이식 획일적 수업 등 반교육적 행위들이 빈번히 벌어지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경기도교육청은 ‘일제고사로 인한 과도한 경쟁 유발로 학습 부담과 교육과정 파행 운영이 진행되고 있다’며 ‘내년부터 평가 방식을 표집 평가로 전환해 달라’는 건의문을 교과부에 보냈고, 강원·광주·전북 등의 교육청은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는 학생을 위해 ‘대체 프로그램을 제공하라’는 공문을 초·중·고등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완장부대는 토론 제기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완장은 자신은 열외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대상화하여 분류하고 지시하고 줄 세우는 권력을 누리면서 즐긴다. 일제고사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교사를 파면하고 학생에겐 불이익을 강제한다.

완장부대의 가치관은 학생 평가를 토대로 교사들에 대한 성과급을 학교별로 차등 지급한다는 데서 그 노골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레바논 출신 미국 사상가 칼릴 지브란은 인간의 가치는 그것을 수치화하는 것보다 더 낮게 평가될 수 없다고 했는데, 한국의 교과부 관료들이 인간과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몇 푼의 돈으로 교사와 학교를 저울질하는 수준을 맴돈다. 그들 자신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반영이겠지만, 교육의 중추인 교사들을 그런 식으로 평가하면서 올바른 공교육을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교육의 이름으로 부끄러움도 없이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것 또한 완장부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완장이라는 것도 이 땅의 교육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돌아가는 몫의 하나다. 학급에서 공부 잘하면 반장이 되듯이 사회에 나가 완장을 차는데, 우리네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말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요로우면서 정교한 인식’과는 아무 인연이 없고 기껏해야 주입식 암기교육 내용을 ‘시험 본 다음에 잊어버린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으로 완장을 차는 데 부족함이 없는 것은 완장 자체가 본디 보잘것없는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긴 하다.

문제는 그런 완장부대가 우리 교육을 지배하면서 우리 학생들이 꿈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순위가 매겨지고 등급으로 분류되면서 자기 서열을 스스로 규정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상실해가기 때문이다. 승리해야 기껏 완장이나 차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쟁에서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오늘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과 학부모에게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인간답게 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고, 교육경쟁에서 이겨야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신세를 면할 수 있어서 너나 할 것 없이 보잘것없는 완장이라도 차려고 애쓰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참교육이 그들 편에 있다는 점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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