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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아름다운 마무리 / 박창식

등록 2011-06-23 19:14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기득권을 내던지면서
퇴장 순간까지 아름답게 매듭짓는
권영길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버지인 권우현은 빨치산 출신으로, 권영길을 낳기 5년 전인 1936년에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1941년에 권영길의 어머니인 하영애가 일본으로 건너왔으며, 권영길은 이때 태어났다. 이후 권우현과 하영애는 도쿄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다가, 권영길이 다섯살이 되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져서 잿더미가 되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권우현은 산청군에 정착하여 지역의 초등학교를 세우고 야학을 여는 등의 활동을 폈다. 여덟살의 권영길(1948년)은 아버지가 설립한 입석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권영길은 이 당시 시절을 회고하며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일곱살 때쯤 아버지와 손을 잡고 신작로를 걷던 모습입니다’라고 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권우현은 빨치산 활동을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1953년 정전협정이 되고, 한국군의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이 전개되었다. 권우현은 이 과정에서 사살되었다. 권영길은 자신의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남몰래 가슴에 새긴 아버지와의 약속’이라고 밝히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전은 권영길의 출생과 소년시절을 이렇게 간추려 놓았다. 그중에 ‘아버지와의 약속’이란 구절이 눈에 띈다. 서슬이 시퍼런 냉전시대였는데도 그 무렵 동네 어른들은 권영길에게 “너희 아버지가 이웃을 위해 학교도 지은 훌륭한 분이니 잊지 말라”고 일렀다고 한다. 소년 권영길이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일찍부터 진보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진 않았을 터다. 대신에 아버지처럼 칭송받기 위해서라도 “바르게 살아야지!” 하고 자신에게 다짐한 것을 ‘약속’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권영길이 그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모든 당직과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백의종군하면서 오직 진보정당 통합에 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대표자 수준에서 통합에 합의했다. 하지만 진보신당 쪽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적지 않아, 26일 당대회에서 대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통합안이 의결될지 의문스럽다고 한다. 진보신당의 독자파 쪽에선 “통합파 인사들은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보려는 욕심이 앞서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권영길이 “나부터 자리 생각을 버리겠다”며 진정성의 근거를 내보인 것이다.

권영길은 민주노총 첫 위원장으로서 1996~97년 노동법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민주노동당 첫 대표에다 대선 후보를 세 차례나 했다. 민주노동당은 그의 삶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분당 뒤에는 “매일 고문당하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자신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 갈등과 무관하지 않고, 그 결과 많은 동료들과 등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세력이 이제 분열을 마감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권영길이 자신을 불쏘시개로 던지겠노라 결심한 데는 남다른 책임감이 작용했을 터다.

백의종군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정치이력은 사실상 끝날 것이다. 그 자신도 “이제는 진보 정치인 권영길보다는 사회운동가 권영길로 기억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쨌든 경남 창원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고, 통합되는 진보정당의 당권을 다시 노려볼 수도 있는 터에 모든 것을 훌훌 내던지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 권영길이 올해 70살로 어차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나이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떠나려면 버릴 것이 남아 있을 때 그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하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적다. 퇴장의 순간까지 아름답게 매듭짓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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