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이 과연 민주적인 당내 소통 기풍을 세울지, 그것이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얼마 전 만났다. 이를 계기로 범여권 권력의 중심축이 박 의원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에서는 친이명박계가 위축되는 것을 넘어 어제의 이명박당이 이제 박근혜당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미래의 권력을 정점으로 해서, 새로운 일방통행 조짐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황우여 원내대표는 정부의 법인세 감세 방침을 철회시키겠다고 기세 좋게 외치다 얼마 못 가 꼬리를 내렸다. 이를 두고 의원총회를 열어도 결론이 나지 않자 그 뒤 공식 논의를 미루는 분위기다. 이들이 청와대 눈치를 봐서일까? 아닐 거다. 그보다는 법인세 감세 철회를 반대하는 박 의원의 심기를 살핀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황 원내대표는 얼마 전 박 의원 ‘알현 시비’를 빚었다. 당권·대권 분리 여부가 당내 쟁점이 되던 때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박 의원 집 근처 호텔로 찾아가 박 의원과 면담한 뒤, 그 뜻을 버젓이 국회 기자실에서 발표한 것이다. 당 서열 1위인 비상대책위 체제의 대표 권한대행이 할 노릇이 아니지만 정작 한나라당에선 문제 삼는 이가 적다. 엊그제 전국위원회에서는 친박계인 이해봉 전국위원장이 자신한테 위임된 266명분의 표를 ‘여론조사 부활’이라는 경선규칙 개정안에 던져 의안을 관철했다. 전국위원 741명 가운데 현장에 164명만 참석했으니 그가 던진 위임표가 결정적이었다. 일부 전국위원들이 위임 권한 불법 행사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할 만큼 지나친 처사임에 분명하지만, 이의 제기에 큰 힘이 실리지 않는다.
여당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두고 일일이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정당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제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느냐이다. 실력자의 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력자의 교체를 계기로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가 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여당이 이 대통령 눈치를 보는 청와대 거수기에서 박 의원이 눈 한번 깜짝하면 그대로 돌격대 노릇을 하는 당으로 변신한다면, 그것은 쇄신도 개혁도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 투사로서 기여한 바 컸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정치집단을 이끈 방식은 그다지 민주적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민주주의와 수평적 네트워크형 리더십을 내세웠다. 효율성 면에선 논란도 많았지만 어쨌든 시대 흐름을 반영해 열린 소통을 실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다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
한나라당의 쇄신은 이 대통령의 실패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다. 그런데 소통 측면에서 볼 때 한나라당의 쇄신운동은 벌써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박 의원을 정점으로 해서, 새로운 권위주의와 일방통행의 싹이 돋아나는 모양새다. 그 배경에는 첫째로 한나라당의 체질 문제가 있다. 박 의원이 외국에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의원들이 공항에 몰려 병풍을 치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언론의 과공도 한몫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박 의원을 감싸고 이 대통령을 때리는 흐름이 완연하다. 둘째, 박 의원 본인이 그런 분위기에 취한 느낌을 준다. 엊그제 그는 동생 박지만씨의 비리 연루 의혹과 관련해 “본인(동생)이 확실히 말했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일축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지만씨 논란은 미래 권력을 둘러싼 비리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의심해보자는 게 본질이다. 뭉개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범이 떠난 골에서 이리가 주름잡도록 할 일은 아닐 터다. 여당이 이번 기회에 민주적인 당내 소통의 기풍을 어떻게 세워나갈지 궁금하다. 지금 한나라당과 박 의원이 응답해야 할 문제다.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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