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 지역부 선임기자
선진국의 잘나가는 협동조합을 보면 심사가 복잡하다.
나눔과 배려의 미덕을 당당히 내세우면서 시장 경쟁에서 대기업을 이겨내다니…, 감동적이다. 여태 경험하지 못한, 참신한 ‘딴 세상 이야기’여서 더욱 그렇다. 우리는, 수익을 내자면 반드시 영리기업 방식이어야 하고 연대와 협동을 외치려면 시민단체를 꾸려야지, 그 중간지대는 없다는 엄격한 흑백 구분 세상에서 살아왔다. 사회적 기업들도 수익사업을 시작하면 우선 주식회사를 세울 생각부터 하게 된다. 협동조합은 효율적이지 못하거나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이렇게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우울해진다.
<한겨레>에 이어 최근에는 에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소개했다. 250여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몬드라곤 그룹은 매출에서 스페인 9위, 고용 규모에서는 3위로 올라선 ‘거대 기업’이다. 해고와 비정규직 없이 이뤄낸 빛나는 성과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1만5000여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면서,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보다 우월한 21세기형 기업 형태”라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파했다. 몬드라곤에서는 한 사업장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이면 다른 사업장에서 직원들을 흡수한다. 단기적 위기에 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그룹에서 3년 동안 적자분의 50%를 지원한다. 연대와 협동으로 ‘함께 죽지 않는 길’을 찾은 것이다.
몬드라곤의 역사도 인상적이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는 1941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에 부임했다. 프랑코 장군의 왕당파에 민주주의를 유린당하고 히틀러의 공군에 폭격당한 도시는 폐허가 됐고 1만명의 시민 대부분이 고향을 떠났다.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는 가난을 극복하자고 기술학교를 설립했고, 1956년에 그 학교 졸업생 5명이 노동자 23명과 힘을 합쳐 석유난로 공장을 시작했다. 몬드라곤은 그렇게, 민주주의와 피의 역사 위에서 자라났다.
규모만 놓고 보면 농협중앙회는 세계적인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세계 협동조합 무대에서 농협은 존경받지 못한다. 협동조합의 가치와 기풍을 잃어버린 채 덩치만 큰 공룡이다. 관료조직보다 더 ‘관료스럽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 농협이 환골탈태해 제자리를 찾겠다고 한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도록 농협법을 개정했고, 새로운 ‘농업 협동조합’의 비전을 세우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농협의 변화는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무늬만 협동조합이던 것을 진짜 협동조합으로 만들자는 ‘혁명’이다. 앞으로 농협이 자기 구실을 잘하면 배추값이 1만5000원에서 1000원 아래로 반년 사이에 폭등락하는 변고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농협을 새롭게 세우는 ‘공사’가 커질수록 불안감과 걱정이 훨씬 앞선다. 아마도 농협의 신용사업은 여느 시중은행과 똑같이 닮아가고, 농산물 유통사업(경제사업)은 대기업과 협동조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점차 대기업의 행태에 가까워질 것이다. 성급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럴 공산이 다분해 보인다.
농협 내부에서는 사업구조 개편의 재원을 따지고 백화점식 사업계획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또는 어떤 사업을 할지 몰라서 지금까지 농민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못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농협의 사람들, 더 꼬집어 말하면 리더십이다. 협동조합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고 협동조합 인식이 희미한 사람들이 농협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영리기업과 관료들의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농협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협동하는 농협 사업을 운영할 기회조차 가지기 어려웠다.
실낱같은 희망은 몬드라곤의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리더십이 새로운 역사를 세우지 않는 한, 단언하건대 농협의 협동조합 성공 가능성은 10% 이내이다.
김현대 지역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김현대 지역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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