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언젠가 29살 이승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1904년 한성감옥에서 5년 넘게 중죄수로 복역하던 때의 사진이다. 동료 죄수들과 나란히 서 있는 그는 분명 달라 보였다. 동시대인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현대성’이랄까, 미소 띤 그의 얼굴엔 냉철함과 여유, 지적 근대성이 듬뿍 배어 있었다. 마치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이승만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젊은 이승만’의 매력을 논하는 이들은 요즘 사람들이 김구는 읽고 이승만은 읽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이승만이 29살 때 쓴 <독립정신>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고종 폐위 음모(역모죄)에 연루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쓴 글이다.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정확한 이해,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무엇보다 태풍 앞의 작은 배와도 같은 조선의 운명에 대한 애끓는 호소는 그의 선각자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4·19가 일어난 지도 엊그제로 51년이 지났으니 ‘독재자 이승만’에 대해서도 좀더 차분하게 봤으면 한다. 대체로 보수 쪽은 <독립정신>에서 보여준 ‘젊은 이승만’의 비전이 선진화되고 민주화된 한국의 초석이 됐다고 보는 것 같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오늘날 북한 모습을 보면 그 말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물론,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 대한 미국의 절대적 규정력, 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끊임없는 길항 관계를 빼놓고 현재의 한국 사회를 논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승만을 차분히 보자는 것이 그를 전면 복권해 광화문 한복판에 동상을 세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슨 기념관을 짓자는 것도 아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만큼 역사 속 지도자를 좀더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보도록 노력해 보자는 것이다. ‘늙은 이승만’의 정치적 과오는 분명하다. 친일 온존, 헌법 유린, 부정선거, 불법 정치공작 등 대통령 이승만의 역사적 죄악은 씻을 길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가 열혈 계몽운동가이자, 국제적 명망을 얻은 독립운동가였으며, 친미·반공·분단 노선으로 오늘날의 한국이 있기까지 일조했다는 지적도 경청하도록 하자.
이승만이 한국 정치에 끼친 결정적 해악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한테 사랑받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김구가 요즘에도 읽히는 것은 그가 국민들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늙은 이승만이 철저히 미국적 얼굴을 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면, 김구는 질곡의 근현대사 어느 귀퉁이엔가 서 있을 법한 민초의 얼굴을 한 지도자였다.
역사적 화해는 가해자가 손을 내민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전두환이 5·18 희생자들한테 먼저 화해하자고 하면 그게 가능한 일인가? 박정희에 대한 일말의 화해도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김대중이 나서면서부터 가시화했다. 김대중도 나설 만하니까 나선 것이다. 양아들이라는 사람이 불쑥 나서서 4·19 희생자들한테 화해하자고 하는 식은, 말하자면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와 같다. 뭔가 다른 저의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삼류 정치 드라마로는 이승만을 좀 다르게 보려는 사람들조차 오히려 멀어지게 할 뿐이다.
한 사회는 지나간 역사 속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눈높이만큼 성숙한다. 한 시대의 지도자들을 더 포용적이고 중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그만큼 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시대적 화해라는 게 어느 한 진영의 일방통행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또 어느 한쪽의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될 일도 아니다. 상대방 주장을 경청하는 것, 그리하여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때, 대한민국호는 그만큼 역사 앞에서 전진할 것이다. 백기철 정치부장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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