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프랑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1897년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도 사회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유럽의 자살률 통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신경쇠약증 같은 개인적 기질 문제가 자살과 확정적 관계가 없음을 밝혔다. 뒤르켐에 따르면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프로이트의 전통을 따르는 정신분석학자들은 불안을 심리적 억압의 결과로 본다. 따라서 불안을 치유하려면 억압의 원인을 찾는 게 필요하다. 이 계열의 학자들이 주로 상담 치료를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애초 프로이트는 성욕을 중심으로 억압 기제를 논했지만, 에리히 프롬을 비롯한 후속 연구자들은 파괴적 문화상황 등 다양한 억압 요인이 불안을 가져올 수 있음을 밝혔다.
반면에 신경정신의학계는 불안을 뇌신경계의 이상에 따른 생리적 결과로 본다. “육체적 근거들의 문제가 정신장애를 낳는다”고 주장한 에밀 크레펠린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프로이트주의자들과 달리 신경정신의학자들은 약물치료 방법을 많이 쓴다. 유명하기로는 프로이트가 훨씬 더하지만, 오늘날 정신의학계의 주류는 신경정신의학 쪽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정신의학자인 크리스토퍼 레인은 제약업계가 정신치료용 알약을 많이 팔고자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 게 신경정신의학 쪽의 득세에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2009년에 번역출간된 <만들어진 우울증>)
카이스트 학생들이 올해 들어 넷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남표식 개혁’에 따른 억압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서 총장과 보수언론 쪽에서는 숨진 학생들이 우울증을 앓았다거나 외국 일류 대학에서는 자살 학생이 더 많다거나 하는 엉뚱한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다. 불안의 원인 제공자와 책임 소재를 끝내 숨겨보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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