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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위해 / 홍세화

등록 2011-04-03 19:37수정 2018-05-11 16:13

홍세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홍세화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청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는 점을 독자들은 용납해주기 바란다. 시민의 힘으로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발의할 수 있도록 청구인 명부 작성을 시작한 게 작년 10월27일이다.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서울시 투표권자의 1%인 8만2000여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6개월 법적 시한이 4월26일로 다가왔다. 그러나 4월3일 현재 취합된 서명자 수는 3만도 채 되지 않는다. 자칫 6개월간의 노력이 허사가 될 판이다. 수구세력의 “너희들, 목소리만 클 뿐, 역시 무능해!”라고 비아냥대는 소리는 집어삼킨다 해도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남이 대신 마련해주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만들어간다”는 믿음을 가진 주체적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겠다.

우리는 광신자들보다 더 열성적인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데, 광신자의 뒤를 이어 열성적인 사람은 극우세력과 사익추구집단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광신과 극단주의, 그리고 사익추구는 그 자체에 열성이 담겨 있는 반면, 인권과 민주주의, 공익과 사회정의는 그 안에 열성이 담겨 있지 못하다. 우리가 인권과 민주주의, 공익과 사회정의를 지향할 때 그 자체에 담겨 있지 않은 열성을 의지로 결합시켜야 하는 이유인데, 이는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깨어난 민주시민의 징표가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궁극적으로 자기 몸이 놓이는 자리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 몸이 놓이는 모든 자리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충족시키길 바란다면 그 출발요건은 인권 존중에 있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끝없는 여정을 요구하는 까닭이 우리 몸이 자리하는 삶의 모든 현장, 곧, 집터, 일터, 배움터에서 우리 모두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면, 학생들의 배움터이며 교사들의 일터인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그 일차적 요건은 거기에 몸 자리를 두는 모든 이의 인권이 존중받는 데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배움터인 학교에서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난 몸 자리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내 인권이 존중받을 때 남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중요한 삶의 거처인 학교에서 주입식 암기교육에서 벗어나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기를 때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나아가 노동자의 권리, 소수자의 인권에 관해 배우고 존중하려면 배움터인 학교에 인권의 가치가 힘차게 살아 숨쉬어야 한다.

학생인권이 이른바 교권과 충돌한다고 보는 일부 주장이 있다. 그것은 우리 근대교육이 군국주의 일제 강점기에 뿌리내린 역사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온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교사들이 자기 일터인 학교에서 주인 되기를 바랄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권위적, 관료적 공간으로 남아 있는 학교를 민주적 공간이 되도록 하는 일로서 그것은 학생인권 신장과 같은 선상에 있다. 내가 존중받을 때 남을 존중하듯이, 내가 복종할 때 남에게도 복종을 요구하는 법, 억압에 맞서기보다 복종을 내면화한 교사일수록 교권을 내세워 학생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발의에 의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투표권이 없는 다음 세대들을 위해 기성세대들이 앞장선다는 점에서 ‘내 자식 이기주의’를 벗어난 ‘세대간 연대’의 멋진 예가 될 것이다. 지금 서울시의회의 구성으로 볼 때, 시민발의 요건만 충족시킨다면 조례 제정은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서울시민들께 청구인이 되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www.sturightnow.net에 접속하여 청구인 명부 서명지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정해진 주소로 수신인부담으로 보내면 됩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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