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수석부국장
김이택 수석부국장
“중산층 붕괴는 소득 양극화를 가져왔다…내 임기 중에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었음이 안타까웠다.”
“정리해고를 수용한 것은 민주정부와 진보세력의 뼈아픈 패배였다…(복지도) 목표를 정해 지시하고 공무원들을 재촉하는 식으로 무식하게 했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하고 말았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토로한 내용은 현 민주당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공로는 적지 않지만 대중의 요구가 경제 민주화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유권자와 지지층은 ‘지역’에서 점차 벗어나 계급적·계층적 요구를 쏟아내는 데 민주당은 10여년 전 패러다임에 묶여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상복지 공약을 내놓는 등 당 노선을 한발짝 왼쪽으로 움직이려는 몸짓도 해보지만 당내 반론이 분출하는 등 아직은 ‘진보’란 이름이 낯설다. 18대 국회 들어 민주당의 ‘진보·개혁’ 세력은 퇴색하고 ‘지역색’은 강화됐다. 야당으로서의 진보·개혁적 정체성을 의심받는 인사, 지역 터줏대감 수준의 인사들이 지도부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한계다.
최근의 2기 방송통신위원 인선은 민주당의 구태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은 1기 야당 몫 방통위원 인선에 실패해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방송 등에서 240명의 기자·피디가 중징계를 당하고(8명 해직, 60명 기소), 정부가 조중동에 종편을 쥐여주는 동안 민주당 추천 방통위원들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손학규 대표 시절 추천한 방통위원은 박근혜 의원 캠프에 참가하고 종편선정심사위원장까지 맡았다. 그 일로 언론·시민단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놓고도 이번에 다시 비슷한 행태를 되풀이한 것이다.
언론단체들이 “충격”이라며 “민주당이 정권 홍보도구로 치닫고 있는 방송통신에 대해 최소한의 경각심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방송독립포럼 성명)라고 논평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특히 김충식 교수에 대해서는 “전혀 야당 추천에 걸맞은 행적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최시중씨와 같은 <동아일보> 출신으로서 조중동 종편 특혜 저지라는 막중한 상황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진보·개혁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자기 ‘지역’ 사람을 낙점하는 구태를 반복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일차적 책임은 지도부에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무더기 종편 허가’ 등 보수일변도 언론구도가 착착 실행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치열하지 못하다. 아니면 눈치보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중동 종편이 광고대행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광고영업에 나서려 해 시장교란이 우려되는데도 견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낙하산 사장에 이어 이제는 <피디수첩> 무력화 등을 통해 중간관리층까지 솎아내고 있음에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방송장악 총책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연임하겠다고 당당히 나선 것도 민주당의 이런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국민의 정부 시절 진행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해당 언론사들이 나와 정부를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나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보수언론과의 싸움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싸움이라고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나는 언론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고 썼다.
정당이 특정 언론과 유착하는 것도, 적대관계에 서는 것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 민주당에 그걸 요구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 10년, 그리고 이후 3년간의 경험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rikim@hani.co.kr
정당이 특정 언론과 유착하는 것도, 적대관계에 서는 것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 민주당에 그걸 요구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 10년, 그리고 이후 3년간의 경험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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