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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완곡어법 / 박창식

등록 2011-02-15 19:13

“무방비 상태의 마을이 폭격을 당하고 주민들은 들판으로 쫓겨나며 오두막은 소이탄의 화염에 휩싸인다. 이런 것이 ‘평화의 회복’이라고 불린다. 몇백만의 농민이 밭을 빼앗기고 괴나리봇짐만 짊어지고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이런 것이 ‘인구의 이동’ 혹은 ‘국경의 조정’이라고 불린다.” 조지 오웰이 1946년에 쓴 ‘정치와 영어’라는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불쾌한 관념을 감추고자 에두른 표현으로 가면을 쓰는 ‘완곡어법’의 허구성을 통찰한 것이다.

이익단체들은 흔히 입맛에 맞게 언어를 사용하고자 치밀한 노력을 기울인다. 1992년 미국 국제식품정보협회(IFIC)는 식품생명공학 홍보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대규모 조사를 벌였다. 이 협회는 그 결과 아름다움, 풍요, 어린이, 선택, 다양성, 흙, 유기물, 유전, 교배종, 퇴비, 열매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집중적으로 쓰라고 회원들한테 권고했다. 반면에 생명공학, 디엔에이, 실험, 산업, 실험실, 기계장치, 조작, 돈, 살충제, 안전, 연구원 등은 사용을 금지했다.

전쟁에서도 완곡어법이 자주 쓰인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 이래 민간인 사망은 ‘부수적 피해’로, 강제수용소는 ‘화해 시설’, 살해하다는 ‘끝내다’(terminate)로, 폭격은 ‘방어를 위한 공격’(defensive strike), 네이팜탄은 ‘특별한 폭발물’로 종종 표현해왔다.

내전중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실상 ‘지역 방어’를 맡은 한국군 파병부대 기지가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공격 주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국군이 현지에서 적대세력으로 지목당하고 있음이 짐작된다. 미국의 뜻을 좇아 명분 없이 파병을 강행한 데 따른 위험이 현실화한 셈이다. 그런데 파견인력의 주임무는 ‘지방재건 지원’으로 돼 있다. 부대 이름은 아프간어로 ‘오쉬노’(친구들)라고 했다. 이 단어들에서도 여러 측면을 고려했다는 느낌이 묻어난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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