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소통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박경희 <한국방송>(KBS) 아나운서실장이 ‘뉴스 전달속도가 수용자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먼저 그는 1939년 일제 강점기부터 2008년 4월까지 30개의 뉴스 녹음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제 강점기에는 1분당 220음절, 1950년대는 330음절, 1960년대는 350음절, 2008년에는 370음절가량으로 뉴스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는 이 변화를 한국전쟁 이후 미국 대중음악을 비롯한 서구 문화의 유입, 상업방송 및 스포츠 중계방송의 등장과 맞물린 결과로 봤다. 북한은 여전히 일제 강점기와 비슷한 1분당 260~270음절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 그는 ‘느리게, 보통으로, 빠른 속도로’ 세 가지 실험용 뉴스를 만들어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반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 뉴스 속도가 빠를수록 뉴스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뉴스 속도가 빠를수록 듣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쫓기는 느낌, 공격적인 인상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는 뜻밖이다. 방송사 종사자들은 아마도 속도를 빠르게 하면 유창하거나 지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말하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지, 듣는 사람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방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한테 귀를 열고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게 중요함을 일깨운다.
청와대가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오늘 지상파방송 3사를 통해 내보낸다. 방송사 자율에 맡기긴커녕, 청와대가 패널 선정과 대본 작성까지 주도했다고 한다. ‘대화’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우습거니와 이렇게 해서 무슨 설득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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