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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농업은 없었다 / 김현대

등록 2010-12-07 21:08수정 2010-12-08 08:16

김현대 선임기자
김현대 선임기자
잠시 혼란스러웠다. 자동차에서 덜 받는 대신 농업에서 얻었다고? 벌써 다 내주었는데, 농업에서 뭘 얻나? 냉동 돼지고기 목살 달랑 하나. 역시나 궁색했다. 미국산 냉동 목살은 이미 국내 수입시장에서 독점체제를 구축했고, 가격경쟁력이 압도적이다. 미국으로선 관세 폐지를 2년 늦춘다고 해서 잃을 것이 없다.

자동차의 실망이 부각되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의 또다른 본질이 묻히고 있다. 일방적인 농업 퍼주기, 농민의 전면적 희생이 잠시 잊혀지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번 협정으로 농산물 수출이 연 18억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농업이 최대 수혜 분야라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농산물 수입이 45억달러였으니, 앞으로 40%나 더 많은 ‘USA 농산물’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예상하는 미국 농산물 수입 증가액은 연평균 3억7000만달러, 미국 쪽 발표의 5분의 1 수준이다. 우리가 축소했는지, 미국이 과장했는지, 진실은 18억달러와 3억7000만달러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유제품에서 사과, 배, 포도, 감귤, 복숭아 같은 과일과 고추, 마늘, 양파, 콩, 인삼에 이르기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태풍을 비껴가는 농산물은 오직 하나, 쌀 말고는 없다. 우리가 예상하는 농업생산 감소는 10년째 되는 해에 연 8958억원에 이를 것이라 한다. 미국의 계산법으로는 그 다섯배쯤 되지 않을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서막일 뿐이다. 자유무역협정이 가장 먼저 발효된 칠레의 돼지고기와 과일은 이미 시장에서 넘쳐나고, 축산·낙농 강국인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도 앞서 타결됐다. 지금 협상중인 자유무역협정이 8개에 이르고, 우리 농업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중국과도 사전협의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모든 자유무역협정은 공통적으로 우리 농산물시장 개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 우리 농업총생산은 42조9900억원, 농산물 수입 총액은 212억달러(22조~23조원)였다. 농산물 수입이 국내 생산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는데, 10년 뒤면 농산물 수입이 국내 생산을 훨씬 웃도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기준이라는 미국의 농업정책을 참고해 보자. 미국 농업정책의 가장 큰 줄기는 이중삼중의 농가소득 지원 장치이다. 또 하나, 흉년에 대비한 튼튼한 재해보험이다.

미국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최저치 이하로 떨어질 때 차액을 보전받는다.(유통융자지원제도) 또 농사짓는 면적에 비례해 해마다 일정 금액의 고정 직불금을 지원받는다. 두가지 지원을 다 받았는데도 미리 정한 목표가격에 모자랄 때는, 가격 보전 직불금을 덤으로 받고, 그러고도 농가 총수입이 기대에 못미칠 때는 추가로 수입보전 직불금 지원을 받는다. 그래서 미국 농업수입의 40%가 정부 직불금으로 충당되는 것이다. 기후변화나 병충해 등으로 흉작이 들었을 때는 재해보험으로 대부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 보험료의 60%를 정부가 부담한다.

미국의 농업정책은, 농가소득 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면서 해마다 농업 예산을 깎아내리는 우리의 얄팍한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유럽연합의 농업정책 또한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는 원칙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협정이 타결된 뒤 “미국 노동자와 농민·낙농업자의 승리”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우리의 대통령은 궁지에 내몰린 농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오후 2시 서울역에서 전국농민대회가 열린다.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부터 들어보자.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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