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리트위트(RT)
위키리크스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이 전세계 외교를 들쑤시고 있다. 연일 세계 주요 매체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파괴력을 보고 있노라면 “세계 외교가의 9·11 테러”라는 이탈리아 외무장관의 말이 실감이 난다. 문건에는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국 공관 외교관들과 국무부가 주고받은 교신이 담겨 있다. 각국 정세 및 주요 인물에 대해 내린 평가나 주요 인사와의 대화 내용 등이 실명으로 공개되면서, 미국 외교가 향후 활동에 타격을 입었다는 불평도 나온다. 중국 쪽 6자회담 대표를 “가장 무능하고 오만한 관료”라 폄하한 게 공개돼 설화를 입은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처럼 제3자가 영향을 받기도 했다. 폭로의 정당성과 법적 논란은 논외로 하고, 개인적 대화나 부처간 정보 공유 등의 애초 의도를 훌쩍 넘어 일반에까지 내용이 유출됐으니 미국 정부 쪽의 분노도 일리가 있다.
디지털 세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수준의 대규모 폭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8일 1차 공개분은 전체 25만여건의 방대한 양이지만, 용량은 1.6GB(기가바이트)였다. 많이 쓰이는 스마트폰 모델의 내장메모리 용량인 16GB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입수에서 전달, 그리고 폭로 및 분석까지의 모든 과정이, 디지털 정보가 아니었다면 훨씬 복잡다단했을 것이다. 디지털 학술정보 및 정부자료에 대한 정보 접근권 허용(오픈액세스) 운동이 이번 사건으로 주춤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싸이월드 같은 곳에 일상의 궤적을 담고, 지인들과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 우리는 어떨까.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기록해 디지털 세상 어딘가에 보관한다는 면에서 우리의 디지털 생활은 미국 외교관들의 전문 보고와 닮았다. 특정 범위를 벗어나면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그렇다. 그러니 이번 사건처럼 ‘털리고’ 나면 피해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은 외교정보의 공개 범위를 두고 말이 많지만, 다른 한편엔 디지털 세상의 허점이란 해묵은 논란도 깔려 있는 셈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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