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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방법과 치성

등록 2010-11-12 18:25수정 2010-11-13 12:06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인터넷에 한때 ‘방법’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녔다. 거리에서 행상을 하던 한 할머니가 깔개를 자주 잃어버리자,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방법을 하겠다’는 말을 서투른 글씨로 써서 내걸었고, 누가 그 글자판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게시했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방법’의 뜻을 알고 싶어 했으나, 지금은 별로 쓰지 않는 이 말을 설명해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말을 등재한 사전도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뜻의 ‘방술’이라는 말만 올려놓고, 도교에서 행하는 신선의 술법이라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나같이 반농반어촌의 미신적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이 말이 매우 친숙하다. 무당이 경을 읽어 축원하거나 방비하는 일을 모두 방법 한다고 했는데, 일상에서는 이 말이 훨씬 광범위하게 쓰였다. 이를테면 생선가시가 걸린 사람이 목에 그물을 두르는 것도 방법이고, 안질에 걸린 사람이 얼굴을 그리고 그 눈에 바늘을 꽂는 것도 방법이다. 문설주에 액막이 부적을 붙이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저 할머니의 경우처럼, 도둑질한 사람의 ‘손발을 오그라뜨리는 방법’도 있다.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새로 산 농기구 한 벌을 잃어버린 사람이 무당을 불러 방법을 했다. 마을 사람들을 불러 쇠스랑을 가운데 두고 경을 읽었더니, 그 쇠스랑이 저절로 솟아올라서 도둑의 엉덩이를 찍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닐 것이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목격했다는 사건은 더 극적이다. 딸의 혼사를 앞둔 집안에서 비단 다섯 필을 사들였는데, 그 가운데 두 필이 없어졌다.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무당이 상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사설을 하여, 굿이 절정에 올랐을 때, 그 집 며느리가 대숲에 감춰둔 비단을 머리에 이고 춤을 추며 나왔다. 시어머니가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굿이나 하지 말 것을. 굿이나 하지 말 것을.”

영검 있는 존재와 교섭하는 일이 이렇듯 저주 어린 방법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할머니들은 새벽녘에 마당으로 나가 샘물 한 그릇을 상에 올려놓고 치성을 드렸다. 그 기도를 비손이라고 하는데, 거룩한 존재의 영검을 빌리자는 것보다는 대사를 앞두고 마음을 경건하게 닦는 데 더 목적이 있었다. 그 시간에는 지극히 회의적인 남정네들도 기침소리까지 조심했다. 내가 한동안 살았던 해안도시는 700m가 넘는 산이 시가지와 접해 있다. 옛날 서원이 있었다는 계곡은 길고 아름답다. 오십 보 백 보마다 샘이 솟는다. 샘가의 바윗돌에는 타다 남은 초와 촛농이 있다. 아랫마을의 아낙들이 치성을 드린 것이다.

나같이 신령이나 정령을 믿지 않는 사람도 그 앞에서는 마음이 달라져서 샘물을 마시는 일이 조금 조심스러웠다. 내가 강의하던 학과의 여학생 둘이 저녁 무렵에 그 계곡으로 산보를 갔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불량해 보이는 젊은 사내들이 밑에서 올라왔다. 아름다우나 외져서 가끔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다. 여학생들은 꾀를 내어 가지고 있던 보자기를 둘러쓰고, 샘가에 남은 초에 불을 붙여 비손을 하는 척했다. 사내들이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여학생들을 에둘러 지나가더란다. 어느 날은 그 계곡을 찾았더니 바윗돌들이 온통 벌겋다. 샘이 있는 곳마다 붉은 페인트로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지나가는 등산객의 말로는 근처 기도원의 원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 그 페인트칠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낱말이 생각났다. 기도원 사람들이 방법을 했구나!

교회 다니는 사람 몇 사람이 봉은사를 비롯한 여러 절에서 땅 밟기를 했다고 한다. 미얀마의 불교사원까지 찾아가 그 일을 했다니 용맹하기도 하다. 땅 밟기는 구약에 그 근거가 있다는데, 그것은 방법에 해당할까 치성에 해당할까. 종교가 맞닥뜨려 싸워야 할 것은 다른 종교가 아니라 경건함이 깃들 수 없는, 그것이 아예 무엇인지 모르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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