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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 노들섬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록 2010-11-05 19:07수정 2010-11-05 19:08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노들섬은 ‘노들나루’ 곧 노량진(鷺梁津)에서 온 이름이다. ‘해오라기가 놀던 징검돌’이라는 뜻이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서울시가 여기에 세계적 수준의 오페라극장을 비롯해 다목적 복합예술공간을 짓겠다면서 ‘한강예술섬’ 계획을 발표했을 때 솔직히 나는 화가 많이 났다. 이름 때문이다. ‘노들섬’이라는 이름이 확정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지만 ‘노들나루’라는 명칭은 아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름이다. 이처럼 의미있고 아름다운 이름을 버리고 복합예술공간을 짓는답시고 이름부터 ‘예술섬’이라고 바꾸려는, 이 단순무지하고 반예술적인 발상에 예술가로서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그래도 한편에서는, 서울의 중심에 놓여 있으면서 사실상 버려져 있다시피 한 이 노들섬이 예술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 우리들 곁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가슴이 사뭇 설레었다. ‘우리것’이 아닌 ‘오페라극장’이 복합예술공간의 중심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썩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장르의 예술 발표 공간도 함께 마련된다고 하니, 옳거니, 이제야말로 제 이름에 맞는 이미지 그대로 우리의 ‘노들섬’에서 사철 울려나오는 ‘징검다리에 부딪고 가는 물소리, 물가에서 노니는 해오라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겠구나, 상상한 것이었다.

자부심도 없지 않았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파리의 바스티유, 시드니의 오페라극장 등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실제 그곳에서 오페라를 감상한 적은 없으면서 그 앞에서 사진은 찍고 온 나의 문화적 콤플렉스도 ‘한강 노들섬 예술극장’(나 혼자서라도 나는 ‘예술섬’이라고는 부르지 않을 생각이다)이 다지어지면 어느 정도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릴 만큼 선진적인 세계적 대도시라면서도 세계적 수준의 예술센터 하나 변변히 갖지 못한 서울이니, 당연히 그랬다. 여행 중에 만나본 먼 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한강의 기적’을 경제적 기적으로만 보고 때로 우리를 ‘이코노믹 애니멀’쯤으로 취급해서 상처받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노들섬은 단순히 서울의 노들섬이 아니다. 조선시대엔 노들섬에 우물이 있었는데 물맛이 좋아 왕궁에 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1917년 노들섬을 징검다리 삼아 한강교가 놓여 수도와 지방이 비로소 직통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영등포를 비롯한 서남부지역이 급속하게 도시화하는 계기를 이루었고, 6·25 때는 이승만 정부가 한강교를 폭파해 수많은 비극을 불렀으며, 맑은 물 고운 백사장으로 수많은 시민들의 이상적인 쉼터 구실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노들섬이 1968년부터 시작된 한강 개발의 여파로 시멘트 콘크리트 옹벽에 둘러싸인 채 흉물스럽게 지금 버려져 있다. ‘문화예술센터 건립부지’라는 표찰을 두른 채 철조망으로까지 봉쇄돼 있는 노들섬을 보면 육친을 버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이미 수백억의 예산을 투자해 복합예술공간의 건물 설계도까지 만든 참에, 새로 구성된 시의회가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들린다.

인구 10만명당 공연장이 파리가 5.88개라면 서울은 0.74개이고, 미술관은 파리가 3.34개, 서울이 0.3개라는 통계를 본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콘텐츠 생산성과 질로 보면 서울은 바야흐로 새로운 르네상스시대를 맞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문제는 생산된 작품들을 수요자들과 나눠야 할 마당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예술은 힘이 아니라 위로’라고 말한 바 있다. 극단적 경쟁구조에 따른 온갖 그늘과 가름과 경계는 절대로 정치적 힘으로 덮이지 않는다.

문화의 ‘위로’가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바라는 것도 그런 위로이고 그런 힘이다. 인구가 많다고 해서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밥’ 먹고 사는 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예술은 우리 모두가 함께 향유하는 것이니, 복지와 같다. 노들섬에 짓는 복합예술공간들의 문턱이 턱없이 높아 혹시 ‘부자들만이 향유하는 공간’이 된다면 나도 반대다. 그러나 우리를 대변할 시의회 의원들이 있으니 그렇게 운영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시의원들이 할 일은 그런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노들섬’을 철조망과 콘크리트 담장의 감옥 속에 그냥 방치해 둘 것인가.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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