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한 장의 사진을 본다. 박근혜 의원이 모교를 위해 모델로 나서 “서강대 이공계가 대한민국을 이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신입생 모집 광고다. 느낌은 괜찮다. 그의 모교가 좋은 학교이면서도 세칭 스카이 대학은 아닌 데서 배타적인 느낌을 주지 않고 이공계인 까닭에 덜 계산적이며 단순한 맛을 풍긴다. 박 의원이 서강대 요청에 응해 사진을 건넬 때 어디까지 계산했을지는 알 길이 없으나, 광고에는 다양한 소구 요소들이 잘 배합됐다.
박 의원이 최근 감성적이며 친근한 소통 스타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는 트위터와 미니홈피에 글을 종종 올리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수필집을 여러 권 낸 사람답게 그의 짧은 글은 감칠맛이 있다. 본인이 퍼뜨린 건 아니겠지만 여중생 시절의 ’박근혜 비키니’ 사진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얼마 전 그는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들과의 모임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요?’라고 묻고(널리 알려진 20세기 ‘썰렁 개그’를 참석자들이 정말 몰랐는지는 다소 의아스럽다) 직접 해답 풀이를 하여 모두 파안대소했다고 한다.
그의 변신에는 전략적 고려가 있을 것이다. 박 의원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보았는지 그동안 공개 행보를 억제했다. 사람들한테 곁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제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앞서 보폭을 넓혀 나가는 첫 단계로 일종의 ‘소프트 행보’를 선택한 듯하다. 이를 통해 그는 ‘얼음공주’ ‘수첩공주’ 등의 차가운 이미지를 털어내려 할 것 같다.
그런 전략 때문인지 그의 대권주자 지지도는 더욱 상승세를 타는 느낌이다. 호남에서 1위를 차지한 여론조사도 나왔다. 감성적인 소통 시도를 문제삼을 건 없다. 그러나 ‘이미지 정치만’ 하고 당면한 중요 현안들을 피해 간다면 그건 곤란하다. 나라 일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장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구실을 하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이 시점에서 박 의원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응답해야 한다. 모두 그의 과거 행보와 무관하지 않은 것들이다.
첫째는 4대강 사업이다. 박 의원은 2008년 “운하 건설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의 후신인 4대강 사업에 대해선 2년째 침묵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위장 대운하’는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하와 4대강은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난개발”(천주교 주교회의 10·27 사목지침)이란 점에서 본질이 똑같다. 운하만 아니라면 난개발은 괜찮다고 할 것인가?
둘째로, 한-미 쇠고기 협상을 맡았던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의 외교통상부 차관 기용이다. 민씨는 쇠고기 협상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을 내란죄로 다스려야 할 폭도라고 깎아내렸다. 그런 인물을 중용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 앞에 잘못을 사죄했던 자세를 정반대로 뒤집는 것이다. 박 의원은 촛불정국에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고 미국과의 재협상을 촉구한 바 있다. 그때의 소신에 변함이 없는 건가?
셋째로, 흔들리는 남북관계와 동아시아 외교 문제다. 박 의원은 2002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으며,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박 의원은 정부의 ‘미국 일변도’ 외교가 낳는 폐해를 더욱 잘 알 법하다. 호남권에서 박 의원의 호감도가 치솟는 데는 그가 냉전수구적 안보관을 갖고 있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더욱 궁금하다.
박 의원은 현안에 대한 언급을 줄이는 편이다. 말의 책임성과 진정성을 소중히 여겨서라고 한다. 이해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현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책임성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이다. 뒷날 ‘나라 일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고 질문받을 수 있고, 그때 썰렁 개그나 하고 다녔다고 답할 순 없지 않은가.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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