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근대 대학의 원형은 서양 중세의 계절이 가을로 바뀔 무렵, 낙엽이 한두 잎 흩날릴 때 태어났다. 시대의 공기를 바꾼 것은 십자군전쟁(1096~1270)이었다. 성지 회복이라는 거룩한 명분 아래 온갖 패륜이 저질러졌지만, 이 전쟁이 인간성의 밑바닥 오물만 들추어낸 것은 아니었다. 야만의 원정길 끝에서 유럽은 새로운 문명을 만났다. 이슬람세계가 간직해 온 고전 그리스 철학·과학이 재발견돼 홍수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의문이 솟아났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 속에 ‘방랑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관습이 배정한 삶의 자리를 거부하고 세상 각지를 떠돌았다. 위그 드 생빅토르라는 이는 이렇게 노래했다. “모든 것을 배워라. 배워서 헛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위도 교회도 거부하고 자기만의 삶과 앎을 찾아 떠도는 그 무리 안에서 ‘개인’이 깨어났다.
바로 그런 분위기를 둥지로 삼아 부화한 것이 대학이었다. 중세 최초의 대학은 13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옥스퍼드가 거의 동시에 대학이라는 제도의 산실이 되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탄생 시점의 대학은 제도라기보다는 열정의 집합이었다. 대학은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중력이 먼지를 모아 별을 만들듯이, 앎의 의지가 모여 하나로 뭉친 것이 대학이었다. 대학을 가리키는 라틴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유니버시티)는 애초에 조합 공동체를 뜻하는 말이다. 세상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만든 자치조합이 우니베르시타스였다. 대학이 건물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었다. 세속의 권력이 진리 탐구의 자유를 위협하면 그들은 도시를 버리고 옮기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1209년 옥스퍼드 탈출의 결과가 케임브리지대학이었고, 1222년 볼로냐에서 탈출해 만든 것이 파도바대학이었다. 그렇게 앎의 열정으로 모인 최초의 대학들에서 가르친 것이 ‘인문교양’이었다. 인문교양과목을 뜻하는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 리버럴 아츠)는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지식’이라고 풀어쓸 수 있는데, 중세 대학은 바로 이런 앎을 통해 자유로운 정신, 곧 온전한 비판적 정신을 키웠다.
대학의 탄생사를 이렇게 들여다보면, 상업화·기업화로 치닫는 우리 시대 대학의 몰골이 한층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반인문적 살풍경 속에서 경희대학교가 2011학년도부터 ‘후마니타스 칼리지’(교양대학)라는 전례없는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는 소식은 황무지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반갑게 들린다.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기 자신을 키워가는 것”이 ‘후마니타스’ 곧 교양교육의 핵심이라고 이 프로그램은 설명한다.
최근 대규모 탈세·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태광그룹 회장의 ‘차가운 경영’이 화제가 됐다. ‘사람을 소중히 하라’는 선대의 뜻을 거슬러 가혹한 구조조정을 일상화함으로써 회사를 살벌한 전쟁터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 2세 오너가 국내 최고 대학을 나와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까지 밟았다는 사실은 무얼 말하는가. 직업적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인문적 앎, 다시 말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없다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후마니타스 칼리지’ 실험이 우리 대학정신의 일대 변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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