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영화배우
몇 해 전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성인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 그것이 비록 합의에 따른 것이더라도 더욱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시점이었습니다. 소위 ‘원조교제’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공중파 티브이가 그러한 여론을 좀더 확대시키자는 의도로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각계 의견을 프로그램 중간에 삽입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해 왔습니다. 저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기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열을 내며 그런 파렴치한 짓에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길게 이야기하다가 말미에 “다만 성인과 미성년자의 성관계라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성인인 대학교 2학년 남학생이 학교를 또래보다 일찍 입학한 미성년자 1학년 여대생과 사귀면서 성관계를 가졌을 경우조차 ‘원조교제’와 동일시하며 같은 처벌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런 경우 다소 정상참작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방송에 나온 제 인터뷰는 밑도 끝도 없이 달랑 “다소 정상참작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방송이 나간 후 저는 시청자의 항의에 곤욕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어찌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자에 대해 저런 관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국 피디의 편집에 의해 저의 생각이 전혀 엉뚱하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 피디에게 강력히 항의했지만 이미 방송이 나간 후였습니다.
저는 배우생활을 하면서 무수한 인터뷰를 하면서 지내왔습니다. 물론 인터뷰 때마다 그 매체를 바라보는 독자 혹은 시청자를 향해 이야기했지만 1차적으로 기자나 편집자를 통하지 않으면 대중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러는 편집자의 시각에 의해 쑥스러울 정도로 제가 미화되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제 의도가 곤란하게 왜곡되는 경험도 제법 했습니다.
그런 제게 트위터의 출현은 참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초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추천으로 우연히 시작한 트위터는 제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고 더불어 대중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게 해주어 저를 더욱더 세상에 깊숙이 들어가게 해주었습니다.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저를 팔로해주셔서 제가 쓰는 최대 140자의 짧은 글이 제법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작게나마 영향을 끼치게 되는 감사한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당혹스러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신작 외국영화 한 편을 본 후 아주 형편없다는 느낌이 들어 혹평을 트위터에 올려놨는데, 그 영화 담당자로부터 곧바로 “곤혹스럽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홍보담당자는 마침 저와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론 사실 영화에 대한 혹평을 쓰기가 꺼려졌습니다. 더구나 한국 영화일 경우 제작진이 대부분 저와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내가 쓰는 글이 완전히 솔직한 글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한 은행에서 자기들의 온라인 서비스 상품을 4회에 걸쳐 제 트위터에 언급해주면 광고료로 제법 큰 액수의 돈을 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왠지 제 트위터에는 어색할 것 같아 거절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제 트위터는 규모는 미미하지만 제 글을 읽어주는 대중이 있고 제가 편집자이자 발행인이 되는, 제법 미디어의 구성과 엇비슷한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사사로운 농담을 적을 때야 아무 부담이 없지만, 제가 쓰는 몇 자에 의해 혹시 부당하게 영향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볍게 즐겁게 시작했던 트위터 생활이 팔로어가 점점 늘어나면서 동시에 부담감이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몇 만명과 소통하며 느끼는 부담이 이럴진대 개인, 기업, 심지어 국가의 명운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언론인들은 얼마나 커다란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살까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트위터에 올릴 글을 치는 제 손이 가볍게 떨렸습니다.
박중훈 영화배우 트위터 @moviej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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