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지난 5월20일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사건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무렵 여론은 정부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한 듯이 보였다. 여론조사를 하면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 국민이 무려 75%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난 7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조사 결과를 믿는다는 국민은 32.5%에 그쳤다.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국민이 35.7%이고, 반신반의하는 사람은 31.7%였다. 이 여론조사는 7월12~14일 성인 남녀 1200명을 상대로 실시했다.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 비율이 두 달도 못 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되레 더 많아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 여론몰이 총력전을 폈던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허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공적 논의는 처음부터 단단히 빗나갔다. 지난 5월의 정부 조사 결과는 합리적으로 의심할 대목이 적지 않았다. 과학적 진실과 안보 전략의 효율성 등을 놓고 당연히 토론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정부 견해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토론에 초청받는 게 아니라 검찰 소환장을 받았다. 경찰은 유언비어 단속을 내세워 인터넷상의 논의들을 추적했다. 친정부 언론들은 정부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공격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극단적 여론통제가 재현되었던 셈이다.
이쯤 되면 정부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뒤로 숨기 마련이다. 이상한 의견을 가진 소수의 ‘또라이’로 몰리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 여론이 75%까지 치솟은 데는 이러한 비정상적 심리 기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독일의 커뮤니케이션학자 엘리자베트 노엘레노이만은 이런 기제를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기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인식될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지만 소수의 것으로 몰릴 때는 고립을 두려워해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침묵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난 5월11일치 ‘아침햇발’ 지면에 ‘천안함 왜곡 경계경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집권세력이 지방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천안함 사건을 왜곡할 가능성을 정면으로 문제제기한 것이다. 그날 야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이 전화를 걸어왔던 게 기억난다. 그는 “지금 시국에서 용기가 필요한 글을 써주었다. 야당 안에서도 천안함 문제는 잘 건드리려 하지 않는 터에…”라고 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경직됐던 게 불과 석달여 전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는 의미가 깊다. 시민들이 정부와 친정부 언론 등이 강요한 침묵의 터널을 빠져나와, 공적 문제에 대해 다시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형 신문과 방송들이 일제히 나팔수 노릇을 한다고 해서 여론을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없음을 실증한 것도 중요하다. 이번 국면에서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새로운 미디어 공간을 통해 소통하면서 여론의 균형을 회복했다.
‘2010년 천안함 국면’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여론의 균형을 회복시킬 능력을 갖춰가고 있음을 실증했다. 2008년 촛불 정국에서 표출됐던 시민의 힘이 다시 확인되는 느낌도 든다. 이것은 권력층의 일방적 여론몰이가 먹히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차제에 집권세력은 여론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할 것이다. 야당 사람들은 집권세력의 여론몰이 기세에 눌려 오금을 펴지 못한 점이 없었나를 성찰하는 게 좋겠다.
국방부는 어제 천안함 사건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것으로 진실 논쟁에 마침표를 찍자고 한다. 그럴 일이 전혀 아니다.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여론의 균형이 회복된 것은 이를 위해 반가운 일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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