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다른 문화나 종교, 예술 등에 대한 무지로 예술품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부른다. 고대 유럽의 민족 대이동 때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이 로마를 공격해 약탈했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반달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에서 살다가 독일·프랑스·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 왕국을 세웠다. 반달족의 족장인 게이세리쿠스는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로마 영역을 약탈하기 시작해 455년에는 로마를 점령했다.
하지만 오명을 남긴 것과 달리 반달족은 실제로 무자비한 파괴행위를 하진 않았다고 한다. 당시 로마 교황 레오1세가 게이세리쿠스를 만나 도시 파괴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고 반달족은 이를 존중했다는 것이다.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은 로켓포까지 동원해 불교 문화유산들을 파괴했다.
통일부가 경의선 철도 도라산역의 대형 벽화를 임의로 뜯어냈다가 비판을 받고 있다. 원로 작가 이반(70)씨가 통일부 요청을 받고 2005년부터 2년 동안 ‘평화 사랑’ 등의 주제로 제작한 벽화를, 물을 뿌려가며 철거해버린 것이다. “작가가 혼신을 바쳐 제작한 벽화를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신짝처럼 벗겨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작가의 항변처럼, 무지한 반달리즘의 소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통일부는 “벽화는 정부 소유인 만큼 철거에 대해 작가와 사전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아무리 소유권자라고 해도 마음대로 고치거나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보는 게 보편적이다. 작품의 동일한 성질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동일성 유지권’을 원작자에게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예술작품에 표현된 창작자의 인격을 보호하자는 뜻에서 저작인격권이라고 부른다. 통일부 주장이 법적으로도 정당성이 약한 이유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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