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목포 앞바다에 삼학도라는 섬이 있었다. 바다가 끝나고 강이 시작되는 곳에 아담한 봉우리 셋을 푸른 새처럼 앉혀놓았던 섬 삼학도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잃고 시가지 끝에 매달린 초라한 둔덕으로 바뀌게 된 것은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우리 학교는 삼학도를 마주보는 바닷가에 있었다. 밀물일 때는 바닷물이 운동장 가에 찰랑거렸고, 멀리 삼학도 주변에서는 영산강으로 올라가는 돌고래 떼의 검은 등이 물보라를 일으켰다. 어느 사진사가 학교의 석조건물과 바다, 삼학도와 유달산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에 성공하여, 학교는 그 아름다운 사진을 홍보용으로 사용했다. 썰물일 때는 학교와 삼학도 사이 중간이 넘는 지점까지 개펄이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조개를 잡기도 했지만, 너무나 하찮은 일로만 보였다. 수업을 하다 말고 창밖을 내다보며 ‘저게 논이라면’이라는 말로 아쉬워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논보다 더 경제성 높은 땅은 없었다.
정치가들은 뭍에서 삼학도까지 제방을 쌓아 그 개펄을 간척해야만 도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 사업이 여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목포가 만년 야당도시인 때문이라고도 했다. 표를 얻어야 할 사람들은 관리들과 합작하여 거리에 거대한 입간판을 세우고, 그 개펄에 들어설 화려한 건물들을 그려 넣었다.
둑 쌓기는 시작되었으나 선거철이 다가올 때만 흙 몇 삽을 퍼다 붓는 식이었으니 공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래도 선거가 잦아서 둑은 이어졌고, 둑을 쌓는 데는 흙이 필요해서 삼학도의 산 하나와 다른 산의 반쪽이 허물어졌다. 영산강에는 하구언을 축조해 돌고래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개펄에는 민가와 상가가 들어섰지만, 정치가들이 입간판에 그려 선전했던 것처럼 화려한 거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곧 후회했다.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목포시는 재정이 넉넉지 못한 지자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예산을 세워 삼학도를 섬으로 복원하고 그 본모습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다. 지난봄에 삼학도와 간척지 사이에 물길을 내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물길은 개울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내가 학교의 유리창에서 바라보던 그 삼학도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인환의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 또 다른 삶이 있으리라는 상념 하나를 만들어주기에도 그 개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무너뜨린 산을 다시 쌓아 숲을 조성하고 거기 들어선 공장들을 이전하려면 또 몇천억의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썰물 때 드러난 개펄을 보고 ‘저게 논이라면’이라고 말했던 사람들과 망가진 삼학도를 원통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사실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변덕을 말할 수는 없다. 한 시절 이 나라의 두뇌가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전망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삼학도를 파괴하는 일에 동참했다기보다는 가난의 볼모로 잡혀 동원되었을 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사건들이 늘 ‘어느 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오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덕스럽지 않기는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앞에서 놀라지 않게 하는 일은 인문학이 늘 내세우는 일이고, 사실 내세워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미래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일, 언제 어디에 소용될지 모르는 일에도 전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다. 실은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인문학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공부가 많게건 적게건 그 일과 관련을 맺는다. 인문학의 위기는 오래전에 찾아왔고, 그 뒤를 이어 이공계의 위기가 걱정거리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위기고, 대학의 위기다.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소비하는 일에만 매달릴 때 그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삼학도의 비극은 그렇게 계속된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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