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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공정한 사회와 떳떳한 엄마 / 김미영

등록 2010-08-17 21:27수정 2010-08-17 21:34

김미영 스페셜콘텐츠부 기자
김미영 스페셜콘텐츠부 기자
“공정한 사회가 무슨 뜻이야?”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보며 “공정한 사회가 절대 될 수 없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랬더니 여섯살 큰딸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요즘 세상일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딸은 가끔 이렇게 곤란한 질문을 한다. “엄마, 대통령 아저씨가 한다는데 왜 안 돼?” “음, 글쎄. 그러니까, 그건….”

한동안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공정한 사회’ 의미만 물었어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공평하고 올바른 사회라는 사전적 의미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잘 대접받고, 법과 도덕, 질서와 양심이 잘 지켜지는 사회를 뜻하지”라고 답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호기심 왕성한 딸 앞에서 내 생각을 입 밖으로 옮긴 게 화근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공정한 사회’도 따지고 보면 사실 대답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의미는 아니다. 내게는 그 말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약자와 낙오자를 배려하고 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공정한 사회는 반드시 되어야 한다.

“네가 공부를 잘하면 돈 없어도 네 꿈처럼 의사가 될 수 있고, 네가 거짓말을 하면 엄마한테 혼나는 것처럼 죄를 지으면 부끄러워하고 벌을 받아야 공정한 사회야. 그런데….” 고심 끝에 대답을 찾았지만, 이내 말문이 막혔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 국민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째, 죄를 지은 사람들이 벌을 제대로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8·15 특별사면 때 비리 정치인과 대기업 경제인이 대거 특혜를 받았다. 둘째, 위법행위나 비도덕적 행위를 한 이들이 부끄러워하는 사회인가. 그렇지 않다. 이들이 더 당당하게 활보하지만, 우리는 관대하다. 위장전입·세금탈루·건보료 체납 의혹이 불거졌던 분을 우리는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총리와 장관, 대법관, 경찰청장 후보자까지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전력이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분노할 줄 모른다.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등에서 보듯 약자에게 공평하지 않다. 양심과 도덕을 안 지켜도 되고,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더구나 지금껏 법을 어긴 이들이 앞장서 법질서 회복을 강조하고, 이제부터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들에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다. “그런데 어떻게 공정한 사회가 오겠니?” 턱밑까지 이 말이 올라왔지만 끝내 참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딸은 요즘 우리 사회와 법과 질서, 양심과 도덕에 관한 최소한의 개념들을 배워가고 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 줄을 서야 한다는 것, 길거리에 휴지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 아이한테 더 큰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 데서나 길을 건너고, 아무 데나 휴지를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야. 너는 그래선 안 돼!”라고 에둘러 설명을 마무리했다. 다행히 딸은 더 묻지 않았지만, 지금 내 맘은 편치 않다. 과연 자녀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하며, 앞으로 더 공정해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그러고 보니 공정한 사회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나 자신이다. 지도층의 위법행위가 드러나도 현 정부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민주주의 후퇴에 예전만큼 분노하지 않았다. 오늘부터라도 딸 앞에 떳떳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김미영 스페셜콘텐츠부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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