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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신기루 같은 국정 지지율 / 박창식

등록 2010-08-16 21:43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시시포스형 인간’이란 말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임무를 받았는데 둥그런 바위는 꼭대기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고 한다. 시시포스형 인간에는 불굴의 의지를 평가하는 뜻과, 무의미한 노동을 되풀이한다는 부정적 어감이 함께 담겼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25일로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그의 임기 전반기를 보면 전력을 다해 뭔가를 밀어붙이다가 주저앉고, 다시 밀어붙이다가 주저앉기를 되풀이했다. 취임 초기 한반도 대운하를 밀고나가다 주저앉았고, 미국과의 쇠고기협상 결과를 국민들한테 관철시키려다 주저앉았으며, 세종시를 밀어붙이다가 주저앉았다.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밀어붙이는 중인데 중국·러시아 등의 심상찮은 반응으로 볼 때 여기서도 주저앉게 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을 밀고나가고 있으며, 40대 총리를 앞세워 세대교체 드라이브를 펴고 있다.

이 대통령의 태도는 늘 자신감에 넘친다. 꽤 높은 국정 지지율이 아마도 자신감의 원천일 것이다. 그의 국정 지지율은 2009년 이래 나름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올해 들어 6·2 지방선거 패배 때 조금씩 출렁거렸지만 큰 흐름은 유지됐다. 최근 청와대가 의뢰한 조사에서는 50% 이상도 나온다 하며, 리서치앤리서치 조사(8월3일)에서는 49%가 나왔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그 자체로 마력을 발휘한다. 국민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며 박수를 치는 것으로 보이니 거기에 도취되기 쉽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정보 한 가지가 있다. 공공정책 컨설팅 기관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얼마 전 서울시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48.6%라는 높은 국정 지지율이 나왔다. 이 기관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대통령이 잘한다고 한 응답자만을 상대로, 그 이유를 물었다. 지지율의 외형뿐 아니라 얼마나 단단한지 강도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실제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라는 응답은 28.2%에 그쳤다. 반면에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잘하는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은 68.1%였다.

국민이 ‘과거보다 잘하는 것 같아서’라고 할 때의 ‘과거’는 취임 첫해를 뜻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지지율이 한자릿수로 곤두박질친 유일한 대통령이다. 첫 조각은 고소영·강부자 색깔로 망가뜨렸으며 미국과의 쇠고기협상 잘못으로 국민의 저항을 불렀다. 결국 취임 넉달 만에 두 차례나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잘못”을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국민들한테 그 시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이명박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형편없이 엉망진창일 때보다는 낫다”고 응답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국민들이 이 대통령한테 거는 기대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국민이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이쯤 되면 그동안 일련의 국정 현안들이 실패한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국민들의 지지 강도가 낮은데도 자신을 강렬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과신하고 마구 밀어붙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이 대통령은 6·2 지방선거 패배 뒤 국정쇄신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마이웨이’로 되돌아갔다. 8·8 개각에서 ‘친위 정치 내각’을 짠 게 대표적이다. 쇄신운동에 매진해온 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사석에서 “대통령이 다시 과신에 빠지는 것 같다”고 했다. 여론을 겸손하게 해석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 듯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여론조사에 신기루 같은 성격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국정과 관련해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좋지만 무의미한 노동이 되풀이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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