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요즘 민주노동당이 잘나가고 있다. 지방선거에선 기초단체장 3명과 지방의원 142명을 당선시켰다. 7·28 재보선에선 광주 남구에서 44%를 얻었으니 지고도 이겼다고 할 만하다. 야권의 침체기에 민노당이 은근히 점수를 따고 있는 배경이 궁금하다.
민노당은 매우 영리한 전략을 펴고 있다. 이들은 야권연대와 관련해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과제 앞에서 작은 고집을 내려놓고 먼저 희생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능력에 맞게 정당한 몫만을 주장하겠다고 한다.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연대의 상대방, 특히 제1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도덕적 채무감을 느끼도록 하는 전략이다.
실제로 7·28 광주 남구 선거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이 연대 파트너인 민노당을 ‘한나라당 2중대’라고 부른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민노당은 광주 망언을 비판하면서도 서울 은평을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노력하자고 외쳤다. 광주시민들은 광주 남구보다는 재보선 전체의 승부처인 은평을 선거 판세에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모욕을 당한 민주노동당이 되레 도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취했으니, 광주시민들의 가슴에서 호의에 보답하자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광주 남구 선전은 우연이 아니었다.
민주노동당은 최근 ‘유연한 진보’를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이것을 소통 전략 측면에서 본다면 자기 중심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다. 진보정당들은 다른 세력과 연대를 논의하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걷어차고 나가는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자기들의 가치가 옳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동은 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시선을 상대방한테서 받았다. 함께 사귀기 어렵다는 평판도 생겼다. 그런데 이제부터 자기 생각을 조금 굽히더라도 더불어 협력하는 쪽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협력하는 상대방한테 호감과 신뢰를 얻는 것은 인간관계에서나 정치에서나 매우 중요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성공 공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변신을 실험중이다.
답답한 민주당 이야기를 해야겠다. 민주당 지도부는 재보선 때 제 몫은 손톱만큼도 내놓지 않고 작은 야당들의 손목을 비틀어 억지 후보단일화를 했다. 집밖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면서 집안 어린 동생들의 먹거리를 넘보는 못된 형의 놀부 심보를 드러냈다. 선거 패배 뒤에 산뜻하게 책임지는 모습도 없이 며칠을 뭉갰다.
비주류는 쇄신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당 쇄신에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최근 민주당과 민노당, 국민참여당, 장외 친노세력을 합쳐 단일연합 정당을 만들자는 ‘빅텐트론’, 진보대통합 우선론, 10월 재보선 조기 대비론을 비롯해 야권 전체의 틀을 바꾸자는 제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민주당 지지기반이 특정 지역과 고령층 위주로 오그라든 현실을 볼 때 매우 절실하게 논의해볼 주제들이다. 그런데 비주류 진영은 ‘정세균 때리기’에 골몰할 따름이지, 야권 재편과 혁신 논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민주당의 낡은 틀은 그대로 둔 채 당권만 잡아보겠다는 것이냐는 의심을 하게 된다.
비주류의 최대 실력자인 정동영 의원은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지난해 그는 서울의 지역구를 버리고 탈당해 고향 전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 뒤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뛴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수도권 전선을 지키기 힘들다고 중도포기한 이가 당의 간판이 된다?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
민주당 중진들한테선 아집이 느껴진다. 아집은 자기 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태도다. 작은 정당이 영리하게 변신하는 마당에 제1야당이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게 딱하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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