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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의무 / 황현산

등록 2010-07-23 20:31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개야 짖지 마라. 밤사람 다 도둑인가? 조목지 호고려님이 계신 곳 다녀올세라. 그 개도 호고려 개로구나, 듣고 잠잠 하노라.” 이는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자료실의 한 찻사발에 적힌 시를 현대의 우리말에 가깝게 옮겨 쓴 것이다. 일본인 고미술품 수집가의 유족들이 한국에 기증한 이 찻사발은 일본의 옛 도자기에 한글이 적혀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찻사발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도공이나 그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원래 ‘망향가’로 알려졌으나, 이제는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조선인 도공이 “자신의 처지를 빗대 푸념한 말”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의견이다. 조선인 도공들은 일본 땅에서 종살이의 신세로 낮에는 움직일 수 없고 밤에만 나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망향가가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이 진솔한 글을 두고 ‘푸념’이라는 평가는 확실히 야박하다. 조금 야박한 것이 아니라 많이 야박하다.

도공은 밤에 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자신을 향해 무턱대고 짖는 개를 보고 울분에 차서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호고려’라고, 즉 ‘오랑캐 고려’라고 부르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도둑은 아니다. 내가 밤길을 밟아야 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조홧속이었는지 그 말에 개가 잠잠해졌다. 이 이국의 개가 도공의 심정을 이해했던 것일까. 도공은 사람인 제 주인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은 제 말을 한낱 미물인 개가 알아들어 주었다는 생각에 깊이 감동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 특별한 사건에 시조의 형식을 부여했다. 사람다운 삶이 허용되지 않았던 이 도공으로서는 제 손으로 빚는 그릇에 오직 저를 위해 이 시를 쓰면서 그 생애에 가장 깊이 있는 시간을 체험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누구나 제 진정을 드러낼 수 있는 세계, 그래서 마침내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만물이 오롯이 서로 소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기도 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포로가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이나 같다.

도공이 그 시를 쓴 것은 벌써 300년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진솔하게 드러내고 싶으나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가슴속에 억눌러 담고 산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김용탁 시인으로 나오는 김용택 시인은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앞에서 사물을 이모저모로 잘 보아야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시를 끌어낼 수 있다고 강의한다. 영화에서 원로 배우 윤정희씨의 몸과 재능을 빌린 양미자 할머니가 그 강의를 듣는다. 꽃을 좋아하고 이상한 말도 잘하는 양 할머니는 자신에게 시를 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인 선생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가슴속에 있다는 시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날아오를 것인가.

사실 김 시인의 저 말이야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그 말을 할 때 시인의 얼굴에도 안타까움 같은 것이 조금 끼어 있다. 그 말이 어떻게 이해되느냐에 따라 신실한 말이 되기도 하고 허망한 말이 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양 할머니는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내놓기로 결심한 다음에 비로소 선생의 말을 실천하고 시 한 편을 쓰게 된다. 그 시는 삶을 삶답게 살려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이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가슴속에 있는 시를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일까. 내 아내만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상영관을 찾기 어렵고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 하듯이.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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