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기득권 포기 결단이 없는 야당 / 박창식

등록 2010-07-12 19:26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민주당 정세균 지도부는 정치집단이라기보다 ‘공무원 집단’ 같다. 뭔가 꾸준히 일을 한다. 그런데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고 흠씬 두들겨맞을 일도 드물다. 자신의 빛깔이 담긴 상품을 내놓고 민심의 바다에서 평가받겠다는 결연한 맛을 찾기 어렵다.

정세균 지도부는 지난해 뉴민주당 플랜 시안을 발표했다가 보수 노선으로 선회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흠칫했다. 그리고 몇달 뒤 최종안을 발표할 때는 비정규직의 사용사유 제한제,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진보적인 정책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문제는 기존 노선을 꽤 큰 폭으로 고치는 것임에도 당내에서 치열한 토론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뜻은 좋은데 ‘건성’이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6·2 지방선거에서 노선의 진정성 문제가 드러났다. 선거 막판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전쟁 반대’를 내걸고 천안함 사건 왜곡과 맞서 싸우는데 당 차원에서 머뭇거렸다.

정세균 지도부는 지방선거를 야권연대로 치른다는 전략을 일찌감치 잘 잡았다. 정 대표는 올해 초 새해기자회견에서 지방 공동정부라는 참신한 개념을 제시했다.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5+4 논의기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데 막판에 참여 정당간, 민주당내 계파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자 슬그머니 발을 뺐다.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보니 남한테 희생을 요구하지도 못하는, 결단과 리더십 부족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선전은 후보단일화에 힘입은 바 컸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앙 차원의 연대 논의가 무산되고 지역별로 알아서 단일화한 결과였다. 따라서 민주당 지도부는 공로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4대강 사업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의 무대로 되어 있다.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가 출마하는 서울 은평을이 핵심 지역이다. 정세는 야당한테 나쁘지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이 불붙고 있으며 천안함 외교는 실패했다. 6·2 지방선거의 여세를 몰아 야당이 여당을 밀어붙여볼 만도 하다. 하지만 선거 판세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기대했던 야권연대가 성사되지 않은 까닭이다.

지방선거 때는 야권이 정책연합부터 논의하면서 명분을 축적하고 분위기를 띄워나갔다. 반면에 이번에는 야3당과 시민단체의 협상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됐다. 논의를 공개했다가 여론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을 민주당이 꺼렸다는데 그만큼 연대에 소극적이었던 셈이다.

협상의 핵심은 민주당의 ‘광주 양보’ 문제였다. 시민단체는 은평을을 경쟁력 조사로 결정함으로써 사실상 민주당으로 단일화할 길을 열고, 대신에 광주 남구에서 민주당이 공천하지 말라는 중재안을 냈다. 반한나라당이라는 연대의 목표를 달성하고 소수정당들한테도 ‘보상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포기하면 야권연대의 맏형으로서 신뢰와 감동을 줄 만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부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한다. 되는 일만 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은 적당히 타협하고 피해가는 ‘정세균 민주당’의 어정쩡한 체질이 역시 문제였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뒤 민심 앞에 겸손해야 한다면서 환골탈태와 혁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한달여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승부가 필요할 때 승부를 걸지 않는 야당, 헌신을 요구받을 때 헌신하지 않고 반엠비 견제심리에만 기대는 야당한테는 미래가 없다. 민주당에 ‘불임 정당’ 인상이 덧씌워지는 것도 “민주당한테 맡겨봐야 안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는 여러모로 원만한 정치지도자이다. 운도 따르는 편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 결단하지 못하고 언제나 운수에만 기댈 것인지 답답하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재명 재판에 ‘상식적 의문’ 2가지…그럼 윤 대통령은? 1.

이재명 재판에 ‘상식적 의문’ 2가지…그럼 윤 대통령은?

[사설] ‘이재명 판결’로 ‘김건희 의혹’ 못 덮는다 2.

[사설] ‘이재명 판결’로 ‘김건희 의혹’ 못 덮는다

[사설] 거짓 해명에 취재 통제, ‘대통령 골프’ 부끄럽지 않은가 3.

[사설] 거짓 해명에 취재 통제, ‘대통령 골프’ 부끄럽지 않은가

그 ‘불법’ 집회가 없었다면 [한겨레 프리즘] 4.

그 ‘불법’ 집회가 없었다면 [한겨레 프리즘]

[사설] 이재명 1심 판결에 과도한 정략적 대응 자제해야 5.

[사설] 이재명 1심 판결에 과도한 정략적 대응 자제해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