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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외유내강의 정치

등록 2010-07-11 23:28수정 2018-05-11 16:09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외유내강의 뜻을 “대외적 유연성에는 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풀어도 될 것이다. 지난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진보신당은 내강 없는 정당임을 드러냈다. 원칙도 일관성도 없었고, 대외적 유연성이라고 할 수 없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이 판단하기 전에 당원들이 먼저 검증, 토론, 의결하는 진보정당만이 갖는 긍정성도 발휘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면서 ‘통합’ 이야기가 불거지는 것도 선거공학적 계산만 있을 뿐,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일상의 정치에 대한 내강이 없음을 반영한다.

한나라당 독주 구도를 흔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나 또한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그런 유연성은 주로 선거 국면에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를 마치자마자 통합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몸담은 정당, 강령에 기초한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일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에서 분리되어야 했던 배경과 이유에 관해 유연성을 보이는데, 그야말로 ‘내강 없는 외유’의 전형이다.

항용 정당의 존재이유를 권력 쟁취에 둔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거기에 몰입해선 안 된다. 권력 쟁취에만 목적을 둘 때 선거에만 치중하게 되고 그 결과에 연연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위한 끊임없는 모색이며 실천으로서 일상의 정치를 실종시킬 위험이 있다. 진보신당은 과연 사회적 발언을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농민, 영세상인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일상의 정치를 보여주었는가. 가령 트위터는 보수 양당 체제인 미국에서 유효한 소통 방식으로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마포 ‘민중의 집’과 같은 ‘희망의 기지’가 다른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 중에 선거 대응 중심의 당 활동이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에게 선거는 장기적 정치비전에서 비롯된 일상의 정치가 국민에게서 평가받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선거 결과나 당 지지율에 지나치게 연연하고 흔들린다.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로 거의 2년마다 선거가 있는데, 2년마다 흔들리는 정당이라면 진보정당으로 뿌리내릴 수 없다. 중장기 정치전략이 있을 수 없고 강령은 휴짓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는 어렵고 불편하며 특히 느린 것인데, 다시금 통합 논란으로 세월을 보낼 참인가.

마치 권력과 선거 바깥에는 정치가 없는 듯 진보 정치인들조차 권력과 선거에 집착을 보이는데, 여기에는 레닌주의의 함정만 작용하는 게 아닌 듯하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옆의 사람이다.” 톨스토이가 남긴 문답 중 하나다. 가족, 동료, 이웃 등 일상의 삶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점을 누가 모르겠는가. 진보정당에서 당원이 가장 소중하듯이. 사람의 눈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외부 정면을 향한다. 내부를 향하지도 않고 아래를 향하지도 않는다. 내 눈이 나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하듯이 내가 서 있는 자리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소중한 존재에게 홀대하는 대신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기대한다. <한겨레>가 기존 구독자들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앞으로 구독할 대상에게 관심과 비용을 더 들이듯이, 우리 각자 또한 이미 형성한 만남에 성실하면서 존재와 관계의 성숙을 모색하기보다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진보신당이 내강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지 않을까.

통합을 말하기 전에 강령을 다시 읽어볼 일이며 무엇보다 서로 존중할 일이다. 자신의 기반인 정당과 당원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국민을 존중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몸담고 있는 절집이 너무 작은가. 그래서 품은 뜻을 펼치지 못하겠다는 스님, 스스로 ‘큰스님’이라고 믿는 분은 큰 절집으로 떠날 일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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