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 지역부문 선임기자
손농사 또는 전화농사라고 한다.
쌀농사를 빗대서 하는 말이다. 전화로 장비를 불러서 손쉽게 농사를 짓는다는 비아냥이 깔려 있다. 농식품부 공식 통계에서 1000㎡ 쌀농사에 투입되는 평균 노동시간은 연 16.2시간. 하루 8시간 노동으로 치면 이틀 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농가의 평균 경작면적이 1만㎡ 정도이니, 농부들은 1년에 20일 정도만 논일을 하는 셈이다. 경지정리와 자동화 덕분이다.
풍년이 겁나는 세상이다. 우리 벼농사는 지난해에 534㎏이란 경이적인 단수 기록을 세웠다. 단수는 단보(1000㎡)당 수확량을 일컫는 농업용어이다. 한해 전에 520㎏의 사상 최고 단수로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그 대기록이 1년 만에 또다시 깨진 것이다. 2년 대풍의 결과는 쌀값 폭락과 재고 대란으로 이어졌다. 행여 흉년 들라는 사특한 마음을 품을 수는 없지만, 또다시 대풍이 들면 정말 큰일이다. 올가을, 하늘이 쨍쨍해도 농심은 걱정이다.
쌀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남아도는 재고 쌀을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0만t당 연 300억원에 이른다. 올해 적정 재고 초과물량이 68만t이나 된다고 하니, 쌓아두지 않아도 될 쌀을 쌓아두는 데 올해에만 2000억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낭비’해야 한다. 몇년 뒤 재고 쌀이 주정용이나 가공용으로 방출될 때면 거저나 다름없는 ‘똥값’이 된다. 게다가 쌀값 하락을 지원하는 쌀 직불금은 올가을 조 단위에 육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다급해진 정부는 당장의 재고를 줄이는 특별 처방으로, 남는 쌀을 짐승 사료로 사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 쌀 먹인 우리 한우’가 우리 식탁에 오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또다른 방안으로는 쌀 재배면적 축소, 궁극적으로는 쌀 감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논에 콩이나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 1만㎡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전작지원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처방마다 약발이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
쌀농사를 대하는 정부의 비판적 인식은 두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농민들이 너무 손쉽게 돈을 벌고 있고, 그래서 쌀 재배면적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곳에 정부 예산을 퍼붓고 있다는 농업투자 낭비론이다. 결국, 정부 쌀정책의 핵심은 전체적인 농업예산 억제에 맞춰져 있다. 또 농업예산을 쓰더라도, 쌀보다 수출경쟁력 있는 작목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쌀농사 소득은 그 자체로 크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쌀농가는 1만㎡의 논에서 자기 인건비 합쳐 고작 550만원(2009년)의 연평균 소득을 올린다. 그래도 농민들이 쌀농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힘든 농사가 벅찬, 고령의 소농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쌀농사는 식량과 농촌을 지키는 고령농에게 최저생계비와 자존감을 보장해주는 최선의 일자리이기도 하다.
농업예산 퍼주기 비난은 국제상식에 어긋난다. 농업생산액의 5% 수준인 우리의 농업보조금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유럽연합은 22.3%이고, 미국도 14.6%이다.(2005년) 독일 정부는 ‘농업의 10가지 기능’을 천명하고, 농민과 농업·농촌에 대한 막대한 예산지원의 근거로 삼고 있다.
당장의 쌀 재고 해소를 위해서는, 남쪽 영토 바깥으로 쌀을 퍼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도이다. 재고 물량이 워낙 많아, 짐승 사료나 술 주정으로 처분하더라도 뚜렷한 한계가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답답해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아무도 ‘북한 쌀’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김현대 지역부문 선임기자koala5@hani.co.kr
당장의 쌀 재고 해소를 위해서는, 남쪽 영토 바깥으로 쌀을 퍼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도이다. 재고 물량이 워낙 많아, 짐승 사료나 술 주정으로 처분하더라도 뚜렷한 한계가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답답해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아무도 ‘북한 쌀’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김현대 지역부문 선임기자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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