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야권이 세대교체 실험에 들어갔다. 6·2 지방선거를 통한 유권자들의 선택에 힘입은 결과이다. 민주당의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 당선자와 무소속의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 등이 주역이다. 이들은 정치의 내용을 ‘전투적으로’ 바꾸고 있다. 안희정·김두관 당선자는 4대강 사업 저지의 맨 앞줄에 섰다. 송영길 당선자는 정부의 천안함 관련 대북 강경조처에 맞서 인천시 차원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할 뜻을 밝혔다. 그 결과 청와대와 야권 사이의 전선이 ‘여의도 민주당’보다는 이들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중앙정부는 행정권한과 예산권한을 움켜쥐고 지방을 쥐락펴락했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게 단적인 예였다. 야당 지방자치단체장도 중앙정부한테 납작 엎드려 예산을 더 타내는 것을 당연시했다. 이런 행태에 유권자들은 ‘아니오’를 표시했다. 대신에 자기 빛깔을 내걸고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정치적으로 훈련받은 40대 주자들을 선택했다. 안희정 당선자는 “지방분권 시대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다. 이들의 요구에 따라 행정권한과 재정권한의 재배분 문제가 중요한 정치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싸움은 간단하지 않을 듯하다. 당장 4대강 사업만 갖고도 청와대는 “정히 하기 싫다면 예산을 빼버리겠다”고 지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맞서 단체장은 여론을 움직이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청와대와 야권 단체장 사이로 전선이 이동하고 확대되는 흐름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쨌든 4대강이나 세종시, 행·재정권 같은 생활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논쟁이 제대로 붙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의미가 있다.
민주노동당 사람들은 올해 마흔한 살로 입당 2년차 초선인 이정희 의원을 대표로 밀어올린다는 카드를 뽑아들었다. 의도는 당에 고착된 ‘올드 운동권’ 이미지를 탈피해보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젊은층과의 소통 단절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젊은층은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야권 재건의 동력이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들은 또한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재미와 발랄함,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특유의 감수성을 표현해왔다. 그러던 끝에 6월2일 지방선거에서 20~30대의 귀환이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야권은 이들과의 접점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칙칙한 느낌이 강했던 민주노동당이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돌파구를 찾아나선 게 흥미롭다.
민주노동당의 세대교체는 ‘감성 교체’가 초점이다. 민주노동당 사람들은 온라인, 그리고 촛불대중과 소통하기에 이 의원이 적임자라고 말한다. 이 의원은 지도부 출마 선언문에서 “좀더 부드럽고 명쾌한 진보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의원은 나름의 끼를 갖췄다. 그는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존 레넌의 ‘이매진’을 불러제끼는 감성의 소유자다. 하루에 4시간을 자면서 일에 몰두하는 대표적 워커홀릭이라고 한다. 또한 시국 현장 아스팔트 바닥에 누구보다 많이 쓰러졌던 국회의원이다. 늘 밝게 웃어 주변 사람들을 기분좋게 해준다.
민주당의 젊은 단체장들은 ‘해바라기형 지방자치’를 거부하고, 분권 시대의 리더로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한다. 이들 때문에 정치권에는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무기력과 열패감 속에서 불임정당 소리를 들어왔던 민주당을 변화시키는 촉매 구실을 할지 모르겠다.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진보정치의 아이콘 교체를 가져올 듯하다. 노회찬·심상정만의 영역이 흔들릴 수 있다. 노쇠한 이미지에 갇혀 있는 민주당한테도 자극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세대교체는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정치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이들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뜻을 밀고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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