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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따뜻한 축구, 따뜻한 국정 / 박범신

등록 2010-06-18 21:17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따뜻한 축구’를 본다.

우리가 잘하고 있어서 따뜻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전을 치르던 날에는 비까지 내렸다. 그런데도 백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고 너나없이 한덩어리가 되었다. 우리는 빗속에서도 뜨겁게 연대했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구별 없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어깨동무하고 춤추는 모습을 볼 때 나 또한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박지성이 ‘봉산 세리머니’를 보여줄 때, 허정무 감독이 어린아이처럼 양팔을 휘두를 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인정사정없는 전사의 그것이 아니라 순정을 다한 밝은 이미지였다. 강인했으나 질기고 모진 느낌은 없었다. 하나같이 모두 겸손하고 따뜻했다. 그들이 ‘전사’라면 따뜻한 전사였다. 덕장으로서, 외유내강의 표상으로 보였다.

그들의 ‘따뜻함’은 당연지사 그들을 보는 우리 모두에게 행복하게 전이되었다. 이겼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은 순간이나, 지도자, 선수, 응원하는 우리 모두가 ‘따뜻하게’ 통해 한덩어리로 얻어낸 행복은 오래갈 뿐 아니라, 일상에서까지 창조적인 에너지로 힘을 발휘했다. 응원이 끝나고 나서 많은 젊은이들이 ‘클린 대한민국’의 팻말을 들고 비에 젖은 광장과 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모습도 그 증거의 하나이다. 또한 천안함 사태를 겪었는데도 세계 최강의 브라질과 맞붙은 북한을 응원하기 위해 밤잠을 포기한 수많은 우리들 자신을 보라. 이른바 ‘운동권’도 아닌 많은 젊은이들이 북한을 응원하기 위해 잠을 기꺼이 포기한 것도 내게는 벌써 ‘따뜻하고 생산적인 추억’이 되었다.

너그럽고 겸손하고 따뜻한 것은 소통의 큰 길을 만든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상대편의 마음을 닫게 해놓고선 더불어 얻어내야 할 그 어떤 성취도 기대할 수 없다.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결국은 나그네의 옷을 벗긴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관대함이 진실로 힘있는 자의 위대한 수단과 전략이 될 수 있었던 역사적 경험은 많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리 뛰어났던 랠프 에머슨도 이르기를 ‘힘을 얻으려면 자기 내부의 샘을 파야 한다’고 했다. ‘내부의 샘’은 물론 자기신념이다. 깊은 신념은 성찰에서 나오고 관용으로 보장받는다. 오늘의 ‘박지성’과 ‘허정무’ 혹은 ‘한국 축구’를 얻은 것은 그들의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팀을 먼저 생각하는 ‘관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따뜻한 국정’이라는 말이었다. 아, 따뜻한 국정, 이라고 나는 되새김질해 중얼거렸다. 지난 선거에서 여당이 왜 패배했는지 그 비밀스러운 회로 하나를 그이가 최소한 눈치챘다고 느꼈다. 호주제가 없어지고 가장의 절대적 권력도 해체된 지 오래된 세상이다. 권력을 독점하여 스스로 과부하된 나머지, 오로지 권위적인 포즈로 자기의 부족한 점은 가리고 식솔들의 주장이나 과오는 한사코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전근대적인 ‘가장’들은 이제 살아남을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일부 향수병을 가진 사람들의 더 힘있는 ‘엄친’을 원한다는 말에 속고 말면, 결국 소외와 분열만을 얻을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 나 또한 전근대적 가장이었다. 나는 엄한 아버지였고, 아이들은 내게 무조건 복종했다. 나는 가정평화를 얻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들의 일기를 몰래 읽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일기장엔 엄할 뿐인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혐오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내가 믿었던 가정평화는 가짜였을 뿐 아니라 위태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지난 선거에서 우리는 몰래 적어두었던 우리 모두의 일기장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대통령께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일기에 대해, 신념이라고 애둘러 말하고 싶은 본인의 자의식, 혹은 일부 전근대적인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에 경도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순정적으로 읽으면 된다. 일기는 어쨌든 진심이기 때문이다.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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