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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천안함과 화쟁론 / 고명섭

등록 2010-06-08 20:15

고명섭 책·지성팀장
고명섭 책·지성팀장
원효(617~686)는 서기 650년 후배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중도에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구려 국경순찰대에 붙잡혔다. 감옥에 수십일을 갇혔다가 풀려나 신라로 돌아왔다. 11년 뒤 원효는 다시 의상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 잠결에 목이 말라 머리맡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이 체험으로 원효는 일체가 마음이 빚어내는 것임을 확연히 깨쳤다. 그날로 유학길을 접었다. 해골물을 마심으로써 원효는 생사를 초탈했다. 막힘 없고 걸림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에 올랐다. 원효는 <무애가>를 부르며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냥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과격한 기행을 일삼으며 돌아다녔다. 기생집도 술자리도 마다지 않았고 광대·백정·걸인·촌로·아낙 같은 밑바닥 인생들과 동락했다. 그의 행로는 그대로 한국 불교의 토착화·민중화 과정이었다.

원효는 문자로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전하는 저작만 20여종이다. 이 저작들이 한국 불교의 뿌리와 몸통을 이루었다.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미국 뉴욕주립대)는 방대한 원효학을 관통하는 핵심어로 ‘화쟁’(和諍)을 꼽는다. 화쟁이란 말 그대로 싸움을 말리는 것이다. 다툼을 다스려 화평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원효의 <십문화쟁론> 서문은 먼저 그 싸움을 불교 내부의 문제로 제시한다. 석가모니 생전에는 뜻이 하나였는데, 석가모니 열반 후에 이론이 분분하여 비 쏟아지듯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 사상의 집안싸움을 다스리는 일이 급한데, 화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에 유·불·도 3교의 다툼이 만만찮았다. 원효는 이 3교에 두루 능통했다고 한다. 이 셋을 화해시키는 것이 화쟁론의 목표이기도 했다. 원효가 활동하던 시기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멸망시키고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 반도를 차지한 때(676)였다. 3국 백성의 갈등이 극심했다. 원효의 화쟁론은 이 정치적 혼란을 이겨내자는 뜻도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싸움을 말리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원효는 다툼의 두 당사자를 모두 부정하고 모두 긍정하는 ‘개비개시’(皆非皆是)를 말한다. 둘 다 틀렸고, 둘 다 맞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양쪽의 주장을 모두 부정하고 다시 모두 긍정하려면, 양쪽을 잘 알아야 하며 그 양쪽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사태를 통찰해야 한다. 원효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한 사람이 코를 만지며 코끼리가 뱀 같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배를 만지며 벽 같다고 한다. ‘눈 뜬 사람’이 보면 두 장님의 말이 모두 틀렸고, 동시에 모두 맞았다. 코끼리 코는 뱀 같고 배는 벽 같다. 이렇게 화쟁을 하려면 눈 뜬 사람이 되어 코끼리 전체를 한눈에 보아야 한다. 박성배 교수는 이 화쟁의 원리가 오늘날 남북대결시대를 극복해 가는 데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북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이 시대에 누군가 화쟁자로 나서야 한다. 화쟁의 그 주체는 이 시대 민중일 수밖에 없다. 싸움을 말리려면 민중이 눈 뜬 존재여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눈 감은 줄 알았던 민중이 눈 뜨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빌미로 삼아 수구세력이 ‘한판 붙자’며 대결주의를 부추길 때 유권자는 그 선동질을 냉정히 무시했다. 그리하여 난파한 것은 천안함으로 득 보려 했던 자들이 만들어낸 ‘대결 정국’이었다. 민심은 표로써 천안함 정국을 침몰시켰다. 남북의 헛된 다툼을 물리치고 대긍정의 화해를 이끌어낼 주체는 눈 크게 뜬 국민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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