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그녀들의 집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 장기임대로 빌린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해 방 열개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지 1년 반, 이제 그 집은 내가 꼽는 서울 북촌 8경의 일부가 되었다. 이름은 따님의 영세명을 따서 지은 소피아하우스. 소피아 대표의 파트너는 그 어머니 마리아님이다. 소피아님은 예약 접수, 홈페이지 관리 등을 맡고 마리아님은 침구 관리 책임을 맡았다. 객실은 미용실을 경영했던 어머니 마리아님이 평생 모아온 살림살이 고가구를 배치해 제각각 다른 분위기로 꾸며졌다.
고객은 주로 혼자서 또는 두어명씩 여행 온 일본과 대만, 홍콩 여성들이다. 미국이나 유럽권의 손님들도 최근 심심치 않게 예약을 해온다. 서울 북촌 한옥 체험을 자녀들에게 해주려는 지방 손님들도 들르곤 한다. 특별히 광고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블로그 입소문을 타고 있으니 주말에는 예약 자체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있다. 싱글룸은 1박에 4만원, 더블룸은 6만원을 받는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상 소피아님과 마리아님이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바로 침구류 관리.
눈부시게 새하얀 베갯잇, 요와 이불 커버를 보면 깔고 눕기가 미안해질 지경이다. 바닥에 눕기를 불편해하는 일부 미주·구주권 손님들에겐 요를 두 개 겹쳐 사용하게끔 배려하고, 두꺼운 요를 특별히 주문제작해 제공하기도 한다.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는 아침식사 시간. 시리얼과 토스트, 달걀프라이에 샐러드와 커피가 제공된다. 숙박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스타일(B&B)이라 아침식사 시간이면 주방 겸 식당은 유쾌하고 소란스러운 다문화 공간으로 변한다. 여름철에는 텃밭에서 기른 풋고추·상추에 들깻잎이 바로 식탁에 오른다. 들깻잎의 강한 향미에 취한 프랑스 손님이 프랑스에 꼭 수출해야 할 한국산 허브로 들깻잎을 꼽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구촌 손님들의 사교무대인 식당 벽에는 여러 나라 손님들이 보내온 감사엽서와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저녁시간에 가끔 손님들의 요청으로 즉석 돼지고기 수육 보쌈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마당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파티엔 여러 나라 손님들의 이야기와 웃음이 어머니 마리아님이 만든 쌈장과 된장찌개의 향기 속에 어우러진다. 도무지 상업적 이익을 생각지 않는 소피아-마리아 콤비는 냉장고 속 비장의 장아찌와 온갖 가정식 밑반찬을 아낌없이 꺼내 외국 손님들에게 권한다.
파티 자원활동가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시점. 소피아님의 친구인 일러스트레이터 규하씨, 마리아님의 신앙 측근인 베르타님이 잡채와 부침개를 만들어 내며, 소나무 아래 풀뿌리 외교 현장은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해진다. 여주인들의 환대에 감동한 손님들은 급속도로 가족화되어 삐걱대는 문짝에 망치질을 해주고, 남자 없는 집의 깜박이는 전등을 교체하느라 팔을 걷는다. 만화를 그리다가 느닷없이 게스트하우스 영업으로 직종을 전환한 소피아님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도무지 휴가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게스트하우스 문을 아예 통째로 닫아걸기 전에는 휴가를 엄두조차 낼 수 없으니 말이다. 요와 이불 커버를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일도 엄청난 에너지 집중을 요하는 부분. 손님이 몰리는 성수기와 객실 점유율이 낮은 비수기 매출이 들락날락하니 아직 전담 도우미를 부를 형편은 안 된다. 가끔 어머니께 집을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소피아님에겐 유일하게 화려한 외출인 셈이다.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내 자식처럼 대접하면 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로 파푸아뉴기니에 파견된 아드님 신부를 그곳 누군가 모르는 이가 따뜻하게 대접하지 않을까 하는 게 어머니 마리아님의 생각이다. 왜 아니겠는가? 꼭 그럴 것이다. 서울 북촌 한복판에 사는 마리아님과 소피아, 두 분 모녀에게서 5월 찔레꽃 향기가 난다.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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