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지난 4월25일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비접촉 수중폭발에 따른 버블제트 효과로 두 동강 났다’고 발표했다. 그 자체로 매우 의문스럽고, 최소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남기는 발표였다. 의문의 핵심은 수중폭발로 생긴 가스가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밀고나가면서 함체를 쪼갰는데도 물기둥이 목격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 한 방울 튀기지 않으면서 어떻게 함체만 수직 방향으로 살포시 쪼개질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합조단은 그냥 ‘뭉갰다’. 합조단이 자락을 깔아놓자, 익명의 군과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활발히 움직였다. 이들은 보수언론을 통해 “수중폭발의 원인은 기뢰보다는 어뢰” “어뢰를 쏠 세력은 북한 외에 누가 있나”라며 논리를 비약시켜 나갔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인양된 함체가 곧 물증”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나중에는 대통령과 국방장관도 전군지휘관회의를 통해 북 소행 몰아가기에 거의 내놓고 가세했다. 과학적 객관적 조사를 통해 ‘사실’을 내놓지 않고, 예단과 추측을 앞세우는 행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완전히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 발견되기 전까지 (남북) 양쪽은 차분히 자제하면서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차피 천안함 여론몰이는 국내용 성격이 강하고, 국내 정치에서 여당은 성공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당 지지율은 50% 가까운 수준으로 수직상승했고, 여당의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큰 격차로 야당 후보들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어제 기자간담회를 했다. 김 장관은 ‘천안함의 연돌(연통)과 침몰 해역 바닥의 모래에서 화약성분(RDX)이 검출됐다’고 말했다. 간담회 내용을 보면 오는 20일께 합조단의 2차 발표 윤곽이 짐작된다. 아마도 천안함의 연돌 등에서 극소량의 화약성분이 검출되었고, 제조국가 등은 더 조사해봐야 한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연돌에서 화약이 나왔다는 것은 정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상하다. 왜냐면 수중폭발로 생긴 가스가 엄청난 힘으로 치고 나가다가 물기둥은 만들지 않고, 연돌 끄트머리에 화약만 살며시 묻혔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합리적인 의문이 들어설 틈은 좁을 것이다. 군과 정부 관계자들, 보수언론은 2차 발표 이후 또다시 대대적인 북풍몰이를 할 게 틀림없다. 어뢰 제조국가, 어뢰 도입 경로, 북한 잠수함 침투 경로 등의 시나리오를 밑도 끝도 없이 펼쳐나갈 가능성이 크다. 오는 20일은 6월2일 지방선거를 열흘 남짓 앞둔 시점이다. 합조단의 2차 발표는 선거 종반 바람몰이의 뇌관 구실을 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끝난 다음 천안함은 영구미제 사건 형식으로 무대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그 소명을 다했으므로…. 이 시점에서 통킹만 사건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미 국방부는 1964년 8월2일 3척의 북베트남 어뢰정이 베트남 통킹만에서 작전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매독스호에 어뢰와 기관총으로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존슨 행정부는 끓어오른 여론을 토대로 의회에서 ‘통킹만 결의안’을 끌어내고 전쟁 개입을 확대했다. 1971년 <뉴욕 타임스>는 국방부의 비밀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미국이 확전 명분을 만들고자 사건을 조작했음을 폭로했다. 당시 북베트남군은 공격은커녕 미 구축함의 위치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송두리째 조작할 것이라고 믿고 싶진 않다. 하지만 여러 정황은 사건의 왜곡 가능성에 대한 경계경보를 강하게 울려주고 있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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