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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금융의 세계화를 통제하라 / 이강국

등록 2010-04-21 20:16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약 두 달 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된 보고서 한 편이 경제학계와 정책결정자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자본 유입: 통제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신흥시장 국가들의 자본통제 조처들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자본 유입으로 인한 자산거품과 금융불안정을 막기 위해서 외국자본을 통제하는 세금과 규제 등을 도입할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연구는 최근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자본통제의 효과를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자본통제를 했던 나라들이 금융위기의 악영향을 덜 받았다고 보고했다.

지금까지 국제통화기금이 금융개방과 글로벌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음을 고려하면 이런 변화는 의미가 작지 않다. 국제통화기금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본통제가 효율적이지 않으며 여러 회피수단으로 인해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강조해 왔다. 자본통제의 목소리는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때에도 잠시 높아졌지만 금세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제금융에서도 시장근본주의적인 입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경제학계에서는 금융세계화에 대한 실망 혹은 반성이 이미 광범위하게 나타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제언과는 반대로, 단순히 자본자유화와 외국자본의 유입이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많은 실증연구들뿐 아니라 2006년 발표된 국제통화기금의 논문조차도 금융개방과 세계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실증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급속한 외국자본의 유입은 환율을 절상시켜 수출과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한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사례에서 보듯 단기 금융자본의 급속한 유출입은 경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한국도 90년대 초반의 부주의한 자본자유화로 인해 단기 외채가 급등하고 경제가 취약해져 1997년 금융위기를 맞지 않았던가.

2008년 이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런 문제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급속한 외자유입으로 버블과 호황을 경험했던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이 자본 유출로 직격탄을 맞았던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신흥시장 국가들이 단기 외국자본의 유입에 대해 규제조처를 속속 도입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브라질은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의 채권과 주식투자에 2%의 세금을 부과했다. 대만도 최근 외국인의 정기예금에 일부 제한을 두는 등의 자본통제를 실시했다. 인도나 터키 등 다른 나라들도 다양한 자본통제 조처를 고려하는 상황이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이단적인 아이디어였던 자본통제가 신흥시장 국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고삐 풀린 금융세계화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도 2008년 말, 24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도 단기 외국자본의 유출과 환율 급등으로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는 위기 이후 전면적인 금융개방과 함께 외국자본의 포트폴리오 투자와 2006년 이후 금융기관들의 단기 외화차입이 급등했기 때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한국 경제는 외국인투자를 강력히 규제하며 차관이라는 형식으로 외국자본을 조달하여 고도성장을 이룩한 자본통제의 성공사례였다. 이제 우리도 지혜로운 자본통제 조처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이고, 23일에는 G20 재무장관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린다. 우리 정부가 신흥국과 선진국의 가교 구실을 하며 자본통제와 같은 의제를 국제사회에 제시하여 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열기를 기대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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