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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산촌의 봄을 맞으며 / 박기호

등록 2010-04-16 21:11

박기호  신부
박기호 신부




소백산 골짜기에도 봄이 왔다. 남도나 도시보다는 늦지만 길가와 밭 언덕엔 보라색 제비꽃과 노란 산수유가 피었다. 개나리 진달래도 꽃을 틔우고 있다. 머지않으면 배꽃 복사 사과 살구 자두 등이 꽃동산을 이룰 것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고추와 야콘, 토마토 모종이 파랗게 솟아나고 있다. 골짜기마다 농부들의 움직임이 늘어난다. 겨우내 눈에 덮였던 밭에는 촘촘히 퇴비 부대가 놓여지니, 이내 트랙터 경운기 소쟁기질과 비닐 멀칭으로 바쁘게 될 것이다. 기나긴 겨울잠을 깨고 봄을 맞는 산촌 풍경은 은둔중인 수행자의 외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골짜기 마을은 해가 짧고 겨울이 길다. 4월에도 꼭 한 번 이상의 눈이 내린다. 연탄이나 심야전기를 이용하는 집들이 대부분인데 한해 적어도 9개월은 난방을 해야 하지만 한여름에는 선풍기 없이도 지낼 만해서 좋다. 춥게 지내다가 서울에 가면 두툼한 점퍼나 목도리로 이방인이 되고 만다. 봄은 생명력이 약동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리 공동체도 파종과 묘목 이식으로 분주하고 생명의 봄이 좋으면서도 결코 행복하지는 못하다. 빛과 소금이 되려는 삶에서 세상의 고난을 외면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아침 미사와 저녁 기도에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특별히 세상을 떠난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한다. 금년 들어서는 유난히도 기도해야 할 영혼들이 많아졌다. 신문을 받아 펼치기가 두렵다.

왜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대형 참사들이 많은지 참담한 현실이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천재 인재를 막론하고 놀라운 사고와 희생자를 내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백령도 앞바다에서는 해군 장병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을진대 차가운 망해에 청춘을 수장해버린 젊은 병사들과 구조에 나섰다가 순장된 어부들과 그 가족들의 통곡을 생각하면 안타까움뿐이다. 함정 사고로 자꾸 떠오르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국가 정부의 책무는 무엇인가, 조국을 지키는 ‘국방의 의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만약에 천안함에 부사관, 수병으로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아들이 한 명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따위 구조작전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에허,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난다.

어쩌면 군대가 민간의 재난구조보다도 못하게 그럴 수가 있는가? 아직도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대중들의 심정은 비참한 것이다. 군 의문사들도 보아왔거니와 대한민국 청년들은 군대를 가서도 제 목숨과 주검마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어린 자식이 유괴되고 행방불명되어도 스스로 ‘사람 찾음’ 인쇄물을 전봇대마다 붙이고 다녀야 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유를 볼까. 서민대중들이 생업에 시달리며 자식을 입영시킬 때, 경제회복을 외치는 지배층들은 자녀의 병역을 면제받아 유학 보낸다. 그 자녀는 실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또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런 인사들 다수로 구성된 정당과 정부 권력이 어떻게 국민을 위한 국책을 가질 수가 있는가?

북한을 적대시하며 국가안보를 우렁차게 외치는 집단에 어쩌면 그렇게도 군대 안 간 자들이 많을까? 참 묘하기도 하지…. 멸사봉공 외치는 자 따로 있고, 전선에 나가 죽는 자 따로 있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참정권의 철퇴로 치유받게 해야 할 것이다. 농부는 때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이 국정을 맡았으면 좋겠다. 산촌에서 봄을 맞는 생각이다.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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