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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김연아가 대학생이 되려면 / 황현산

등록 2010-04-02 19:37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김연아 선수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뒤이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 지금쯤은 앞날의 거취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가 어느 매체에 실린 ‘연아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서, 김 선수에게 공부를 하라며, ‘스무 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 ‘역설적으로 소소한 실패와 좌절을 지금 하라고’ 곡진한 말로 권고했다. 그 좋은 글을 읽고 나도 마음이 움직여 조금 흉내를 내서 이 글을 쓴다.

지금의 대학 풍속에서는 김연아가 강의에 출석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 학점을 얻어내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대학을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사회활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룰 만한 것을 이루었으며, 그것이 그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려고 든다면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상적인 것은 평범한 것인데 그는 평범한 학생이 아니다. 그의 편에서야 그 강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낼 수 있겠지만, 동료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들까지도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평범한 학생은 학교 근처 식당에서 싸고 양 많은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고 토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토하는 학생의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한다. 광장의 잔디밭에 앉아, 지나가는 얼굴 하얀 남학생을 곁눈질로 훑어보기도 하고, 수줍은 시선을 느끼기도 한다. 새벽같이 도서관에 나가 맡아 놓은 자리를 책가방이 지키게도 하고, 공들인 보고서와 벼락치기 보고서를 번갈아 제출하고, 친구에게 대리출석을 부탁했다가 젊은 선생을 펄펄 뛰게도 한다. 이런 일이 김연아에게는 쉽지 않다.

말 그대로의 공부도 김연아에게는 쉬운 것이 아니다. 그에게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넘치기 때문이다. 겨울올림픽 직후 한 인터뷰에서 김 선수는 체육심리학에 흥미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런 과목이건 다른 과목이건 그 내용은, 여러 경기에서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긴장을 이겨냈던 그에게, 매우 지루하고 시들한 것이기 쉬우며, 그래서 포기되기 쉽다. 지루하고 시들한 것의 진수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역시 평범한 학생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김연아가 그를 평범하지 않게 만들었던 그 자질로 이 어려운 일들에 어느 정도라도 성공하게 된다면, 돈이 될 수도 없고, 영예를 안겨주지도 않으며, 당장은 업적이 될 수도 없는 일에 턱없이 진지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건 사회적으로건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대학이라고들 하는데, 대학에는 미래의 직접적인 압박에서 벗어나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는 너무 악착스럽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갈수록 두터워질 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삶을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가 미래의 걱정거리로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학은 지금 이 자리의 삶에 자신을 자유롭게 바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대학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구실 아래 그 자유는 줄어들었으며 이제는 거의 폐기되기까지 했다. 김연아가 적을 둔 대학이며 내가 강의하는 대학의 김예슬 학생이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하고, 서울대의 한 학생이 그에 호응하여 대자보를 붙이게 된 것도 필경 대학의 없어져 버린 이 자유와 관련이 있다. 김연아가 평범한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 대자보 앞에도 서 있어야 할 것이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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