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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촛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 / 김경애

등록 2010-02-23 19:45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에비, 촛불 들고 나올라!” 요즘 강남 사모님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비아냥 섞인 농담’이다. 우연히 귀동냥한 얘기여서 그 말뿌리까지는 캐보지 못했지만, 2년 전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의 일부 기득권층에 충격을 넘어 ‘호랑이의 공포’로 남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25일로 출범 2돌을 맞는 이명박 정부는 내내 ‘촛불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속에서 허우적거려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2008년 5월2일 십대 여학생들이 ‘미친 소, 너나 처먹어라’라고 외치며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처음 밝혀든 촛불은 전국을 넘어 국외 동포사회에까지 들불처럼 번져 수백만명이 참여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시작했던 외침은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맞서 ‘엠비(MB) 탄핵, 정권 퇴진’으로 거세졌다. 실체도 없이 자연발생한 저항의 불길이었으니 출범 백일도 채 안 된 이 정부에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를 불러일으켰을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그때 경찰이 허둥지둥 광화문광장을 가로막았던 ‘명박산성’은 치워졌지만, 이 정권은 내내 촛불 민심 앞에 ‘소통의 벽’만 높이높이 쌓아왔다. 당장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900여명을 무더기 사법처리했다. 광우병대책회의 집행간부들은 물론이고, ‘유모차부대’ 주부 수십명을 소환조사하는가 하면, 미니홈피에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밝힌 연예인과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집회 소식을 전한 십대 재수생까지 줄줄이 기소나 소송을 당했다. 그 정점은 농림수산식품부가 <문화방송> ‘피디수첩’에 대해 ‘광우병 소의 위험성’ 보도로 정운천 장관과 쇠고기 협상 대표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압에 의해 ‘촛불’을 제거하려는 이 정부와 보수세력의 지난한 시도는 ‘핵심 불씨’로 지목한 ‘피디수첩’에 대한 무죄 판결에서 보듯 대부분 무위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아빠진 공안통치와 ‘방송장악’과 같은 여론 통제로 민심을 자극해 자꾸만 불씨를 되살리는 무모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당장 정부와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야간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할 태세다.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집시법의 일몰과 일출 사이 모든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받아들여 헌법불합치 결정과 함께 올 6월 안에 법 개정을 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라며, 외려 ‘개악’을 하려는 것이다.

사실, 집시법 개악 논란의 배경에는 여전한 촛불의 불씨가 숨어 있다. 2008년 10월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당시 위헌 제청을 한 박재영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피고에게 동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보수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지난해 2월 끝내 법복을 벗었다. 그로부터 한달 뒤 그가 법원을 떠난 진짜 이유가 밝혀지면서 이른바 ‘신영철 재판 개입 사건’이 터졌다. 그의 위헌 제청을 계기로 동료 판사들이 ‘촛불 재판’을 미루는 사례가 이어지자, 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사건을 조속히 처리하라고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건이 터진 지 1년을 맞은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소, 참여연대 등은 그의 사퇴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트라우마는 환자 스스로 마음을 열 때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 정권 스스로 ‘소통의 벽’을 허물지 않는 한, 민심 속에 살아 있는 촛불은 결코 꺼뜨릴 수 없다는 얘기다.


김경애 사람팀장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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