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 신부
소백산 골짜기 산허리에 자리잡은 우리 마을은 비탈진 오르막 지형이라 많이 불편하다. 처음부터 개발 전망이나 땅값도 오를 이유가 없는 불모지 같은 곳이 우리 차지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환경에 마을을 세우느라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이 고생과 땀을 흘리고 있다.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다. 채 녹기도 전에 다시 쌓이고 처마에는 장대 고드름이 매달린다. 북서풍을 막아주는 뒷산이 있어 바람 적고 따뜻한 지형인데도 길은 계속 얼어붙어 있다. 차량 운행은 생각지도 못한다. 엉덩방아가 두려워 걸어다니기조차 쉽지 않아 ‘꼼짝 마라’이다.
이번 설 명절에는 버스가 끊겨 본가를 찾아가던 가족들이 국도까지 6킬로 눈길을 걸어 나갔다. 아이들만 신난다. 경사진 농로가 눈썰매장이 되기 때문이다. 동네 어른들은 ‘눈이 많은 해는 가문다’고 한다. 지난해 봄에도 가뭄이 심해서 작물이 좋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절대 질서에 따른 거라서 여름은 여름답게 덥고 겨울은 겨울답게 추운 것이 당연하다. 여름이 시원하면 가을에 농작물이 여물지 않고 겨울이 따뜻하면 이듬해 병충해가 심하다. 기상이변을 가상한 영화들이 종종 나오고 있거니와 ‘이상기후’는 지구가 받은 상처의 반응일 것이고 자기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기(運氣)현상일 것으로 생각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본래대로 존재하는 ‘자기다움’에서 가장 아름답다. 자기다움이란 건강성과 평화의 완전한 상태다. 그래서 자기다움이 위협받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본성으로 복귀하려는 속성이 있다. 생체항상성과 같다. 자기다움에 가장 완벽한 것이 자연이다. 고대 희랍의 철인들은 만물의 생성·변화·소멸을 가능케 하는 힘을 규명하고 싶어 했다. 물이 아닐까, 불이 아닐까…. 그런데 중국의 철인들은 ‘스스로(自) 그러하다(然)’, 즉 ‘자연’이라 했다. 계절의 변화도,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도, 낳고 죽는 것도 자연의 섭리다.
자연은 항상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다. 강은 강다움으로, 산은 산다움으로 있다. 피조물은 자기다움으로 인해서 스스로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되고 서로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연은 자기다움을 통해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무궁한 자비와 은총을 베푸신다. 본래 만물이 먼저 창조된 다음 인간이 막내로 창조되었다. 인간이란 자연의 틈새에 안겨 자연의 젖을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고 그것이 ‘사람다움’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다움을 알지 못하고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 겨울 난방 여름 냉방으로, 밤도 대낮처럼 밝히며 두바이 사막에 스키장도 만든다. 과학기술의 오만과 자본의 욕망은 자연을 가공하여 사고팔고 약탈한다. 4대강 푸닥거리가 그런 것이다. 단양 읍내에 나갈 때마다 남한강변 국도를 지난다.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볼 때마다 멀리서 난도질당하는 4대강의 신음과 절규가 들려온다. 4대강 삽질만 생각하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난다. 자연을 강탈하는 행위는 하늘 두려운 줄 모르는 패륜이요 강도 짓이다. 재앙이 닥친 다음에야 4대강 복원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지금 사순시기를 지낸다. 사순절(고난절)은 자기다움을 회복하는 수행의 시기이다. 교회가 교회답고 신도가 신도답기 위해 회개하고 거듭나는 때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놓으면서도 자기 아닌 모든 것을 벗어버렸고 자신 안에 담긴 신성과 진리만을 온전히 꽃피웠기에 부활의 빛으로 나가신 분이다. 그리스도의 자기다움이었다.
박기호 신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