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기원전 2세기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70만개의 두루마리를 소장했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던 이 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학문과 역사’를 아울렀다. 두루마리는 나일강의 갈대를 평평하게 편 파피루스로 만들었다. 페르가몬(오늘날의 터키)의 군주인 에우메네스 2세는 이에 버금가는 도서관을 만들고자 나일에서 갈대를 수입하려 했다. 그러자 프톨레마이오스는 갈대 수출을 금했다. 에우메네스는 그의 서기들에게 동물 가죽의 앞뒷면에 글을 쓰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잘라낸 사각형 가죽들로는, 심지어 가장 결이 고운 양의 가죽으로도 빈틈없이 두루마리를 말아낼 수 없었다. 가죽 두루마리는 부피도 컸다. 에우메네스는 서가에 보관하기 쉽도록, 가죽의 한쪽 모서리를 바느질로 묶는 특별한 작업을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책이 탄생했다. 책은 장점이 뛰어났다. 두루마리는 후반부를 읽으려면 모두 펼쳐야 하는 반면에, 책은 원하는 부분만 어디든 한번에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미디어학자 벤 배그디키언은 “(오늘날 기준으로) 책은 무작위로 아무데나 접근이 가능한 매체로 불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제본책과 두루마리는 13세기까지 함께 사용됐다. 새로운 기술이 한순간에 이전 기술을 사라지게 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둘은 오랜 기간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의 애플은 어제 새로운 개념의 태블릿 피시를 공개했다. 키보드 대신 손이나 펜으로 조작하도록 터치스크린을 채용한 휴대용 피시다. 이것이 신문·책 등 기성 종이매체를 대체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어내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런 신제품의 동향을 따라잡는 건 좋다. 하지만 생태계의 ‘돌풍’과 ‘대체’가 실제 일어날지는 천천히 두고 볼 일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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