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관리실장
안국동 어느 골목 깊숙이 내가 좋아하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다. 점심시간이면 근처 크고 작은 사무실 직원들로 언제나 붐빈다. 값은 5000원. 밥과 된장국, 고등어조림에 뚝배기계란찜, 멸치볶음과 시금치나물, 오징어젓갈로 구성은 단순하면서도 정갈하다. 그야말로 집에서 먹는 밥상 차림이다. 서넛이 가게 되면 5000원짜리 부추전 한 접시를 추가해 분위기를 띄운다. 오전 세 시간의 노동을 마쳤으니 나는 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 뿌듯하다. 영업상 상대를 접대할 목적이나 누군가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심리적 부양책으로 비싼 레스토랑을 선택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딱 적당한 양과 내용이다. 배가 부르다. 이제야, 오늘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된 이웃들을 둘러본다. 바로 옆 식탁에 앉은 20대 여성 넷, 직장 유니폼에 신분증까지 목에 건 채로 재잘댄다. 뚝배기계란찜의 조리법을 서로 추리해보며 어떻게 하면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감탄을 연발한다. “여기 된장국 리필해 주세요.” 큰 소리로 외친 후 쑥스러워 마주보고 또 큭큭 웃는다. 바라보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질 지경이다. 그 옆 식탁에서는 30대 회사원 셋이 부서 내 의사결정구조의 경직성을 성토한다. 한 청년이 넥타이를 조금 풀더니 팀장님의 독선으로 직무평가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두 사람은 동조하는 분위기다. 청년은 낮지만 흥분된 목소리로 비판을 계속한다. 다른 이들은 묵묵히 그를 경청한다. 국물을 훌쩍 들이마시고 밥을 마치 모래알처럼 씹는다. 그들 모두 마지못해 먹는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이렇게 맛없이 먹어서는 안 될 텐데. 우리들의 한 끼 밥상을 위해 온 우주가 동원된다는 말이 있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협력해 곡식과 채소를 키워냈다. 촉촉한 봄비와 여름의 천둥번개, 초가을의 태풍까지 대자연의 사랑이 있었고 그 작업내용은 우리가 먹는 쌀 한 톨 한 톨에 새겨져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다 여름내 땀 흘려 일한 농부와 바닷바람 맞으며 일한 어부의 정성이 이 모든 것을 있게 했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너무 자주 그들의 수고를 잊는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가 편안히 앉아 밥을 먹는 저 건너 부엌에는 밥상을 차려주는 아짐씨들이 있다. 뚝배기계란찜이 넘치지 않게 앞으로 뒤로 가스불을 조절하는 아짐씨, 불 앞에서 일하느라 솟아난 땀방울을 훔친다. 날렵한 손놀림으로 반찬을 그릇에 담아 커다란 쟁반에 가짓수대로 차려내는 아짐씨, 음식을 나르고 밥상을 치우고 닦는 아짐씨까지, 하나같이 수수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중년의 그녀들. 각자 맡은 일에 몰두해 있어 그저 덤덤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수천 수만 번 밥상을 차려냈을 그녀들. 무심한 듯 나물을 조물조물 무치고 파·마늘 듬뿍 넣은 양념간장으로 고등어를 조려내는 그녀들의 노동으로 바로 우리의 즐거운 점심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이 총체적 수고로움 앞에 어찌 감동 없이 밥숟가락을 들 수 있을까? 더구나 누군가를 비난하고 원망하거나 심지어 저주까지 하면서 밥숟가락을 드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혼자서든 여럿이든 맛있고 즐겁게 먹는 게 밥상에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여야 한다. 옆 식탁의 젊은 그들, 끝내 무감동한 얼굴로 밥값을 치르고 떠난다. 어깨가 무거워 보이고 뒷모습은 좀 쓸쓸하다. 오늘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들이 ‘일용할 한 끼 밥상’을 받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전율하기를 바라 본다. 맛있게 먹기, 우리들의 밥상을 차려준 우주에 감사하는 방법일 것이기 때문에.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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