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20세기 초 미국 언론계에서 여론조사가 인기를 끌었다. ‘공중의 집약된 의견’이 갖는 힘과 매력 때문이었다. 미국 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엄청난 여론조사 물량 작전을 펼쳐 잡지계의 정상에 올랐다. 이 잡지는 1924년 대선에서 1600만명의 유권자에게 설문지를 우송했고 28년에는 1800만명한테 인기투표 용지를 보냈다. 그런데 36년 선거에서 ‘참사’가 빚어졌다. 당시 공화당 후보는 앨프리드 랜던, 민주당은 현직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이 잡지는 1000만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해 230만장을 반송받았다. 집계 결과, 랜던이 압승할 것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루스벨트가 유효투표의 60%를 얻어 재선됐다. 잡지는 망신거리가 됐고 2년을 버티다 결국 38년 폐간하고 말았다.
문제는 표본이었다. 이 잡지는 구독자 주소록과, 전화 가입자, 자동차 보유자 명단을 토대로 조사를 했다. 당시 미국에서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이며 공화당 지지자였다. 표본 크기가 아니라 표본 추출 방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고, 특정 계층만 상대로 조사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대학교수이자 광고회사 임원이었던 조지 갤럽은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30년대 초 과학적인 샘플링 기법을 개발하고 나선다.
갤럽 이래 표본 추출의 과학성 시비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요즘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신종 여론조사 왜곡’이 이뤄지고 있다. 세종시는 본디 그 자체의 자족성보다는, 전국적 네트워킹 효과에 주안점을 둔 국가 균형발전 구상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들은 그것을 기업이 좋으냐, 행정부처가 좋으냐라는 도시 자체의 자족성 문제로 논점을 둔갑시키고 있다. 세종시 수정 찬성 의견이 다소 우세하다는 조사 결과는, 이에 따른 우문우답 성격이 짙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한껏 즐기는 눈치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