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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열석발언권과 통화정책 / 전성인

등록 2010-01-13 21:48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연초부터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삐걱거리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이제까지의 관행을 깨고 앞으로 금융통화위원회에 열석하여 발언할 수 있는 권리인 소위 열석발언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은 한국은행법 제91조에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기획재정부가 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새해 벽두부터 두 기관이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단 말인가? 이를 잘 이해하려면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13개 금융개혁 입법 중 하나로 국회를 통과했던 한국은행법 개정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7년의 금융개혁은 한국은행의 역할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우선 그 이전까지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은행에 대한 감독 기능을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하였다. 즉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만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통화신용정책의 목표는 물가안정으로 단일화했다. 이 두 가지 변화에 의해 한국은행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축소되었다. 정부가 그 대신 한국은행에 준 당근이 중앙은행의 독립성 제고였다. 그 결과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금융통화위원회로 복권되고 그 자율성이 강화되었다. 구체적으로 그 이전에 재무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금융통화위원장을 맡도록 되어 있던 것을 개정하여 경제부처 장관을 위원에서 배제하고 한국은행 총재가 위원장직을 맡도록 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경제관료들은 ‘점령지’였던 한국은행에서 후퇴하면서 아주 작은 교두보 하나를 남겨두었다. 그것이 재무부 차관(현재는 기획재정부 차관)의 열석발언권 조항이었다. 물론 1997년의 한은법 개정 이전에도 차관의 열석과 관련한 조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정 이전의 한은법 제11조에는 재무부 차관이나 한국은행의 은행감독원장 등이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 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의미가 없는 조항이었다. 왜냐하면 개정 전에는 재무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이자 위원장으로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열석이란 문자 그대로 참관 내지는 자문 정도의 수준을 의미했다. 그러던 것이 1997년의 개정을 통해 ‘열석’에서 ‘열석발언’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과거 ‘점령군의 추억’을 상징하는 화석일 뿐 그것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간 정책협의의 일상적이고 중요한 통로를 신설한다는 취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 기획재정부가 이 조항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강산이 변하고 정책환경도 많이 변했다. 특히 재작년의 외화유동성 위기는 금융안정 또는 거시경제적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에 따라 지금 국회에는 한국은행에 금융안정의 책무를 추가로 부여하고 제한적인 조사권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계류중이다. 이것은 지난 ‘97년 체제’의 수정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이번 열석발언권 파동은 97년 체제를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자는 기획재정부의 문제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을 충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열석발언권 파동은 적절한 문제제기 수단은 아니다. 현재의 체제가 어떻게 변모한다고 해도 기획재정부의 차관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 일상적이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화석을 부활시키려는 헛된 노력을 중단하고 전문가를 초빙해서 통화정책과 금융감독 정책의 구조 전반을 재검토하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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