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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아이리스·광화문·용산 / 김경애

등록 2009-12-17 21:45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할리우드 키드’가 영상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내 또래 ‘386세대’의 다른 이름이라면,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키드’라고 고백할 수 있겠다. 어릴 때 보기 드문 텔레비전이 집에 있었던 덕분인데,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이 마루는 물론 마당의 평상에까지 빼곡히 둘러앉아 드라마 ‘여로’에 울고 웃던 장면이 지금도 아련하다.

1990년대 중반 방송 취재를 담당하게 됐을 때 당대의 명연출가들에게 늘 궁금했던 ‘시청률 제조의 비법’을 묻고 했다. 마침 ‘귀가시계’로 불릴 정도로 인기 초절정이었던 ‘모래시계’를 비롯해 ‘엠’(M), ‘별은 내 가슴에’ 등 화제작들이 쏟아지던 한류의 초창기였다.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스타 피디들의 몸값도 치솟았는데, 그들이 귀띔해 준 ‘비법’은 대부분 일치했다. 바로 ‘감정이입’과 ‘선망’이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 속에 희로애락을 간접 체험하고, 나도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는 갈망을 자극할 때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극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륜이나 고부 갈등 이야기가 ‘막장’이란 비난 속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거나, 성춘향과 신데렐라가 식상하도록 재탄생하는 것도 그런 원리 때문이다.

최근 광화문광장이 정치적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선덕여왕’과 더불어 올해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 무대로 전례 없이 ‘12시간 통제’가 되는가 싶더니, 하룻밤 새 아파트 13층 높이의 스노보드 점프대가 세워져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는 도심 스포츠쇼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런데 두 사안에 대한 여론은 사뭇 달랐다. 휴일 오후 내내 도심 한복판을 가로막는 불편을 주고, 핵 테러를 둘러싼 총격전에 자동차 폭발까지 벌어지는 ‘썩 유쾌하지 못한’ 장면을 찍었을 때는 화제 기사가 쏟아지고 시청률까지 높아졌다. 덕분에 광화문광장이 ‘한류 관광 명소’로 등장할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도 이어졌다. 반면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스노우잼 2009 대회’에 대해서는 비난이 더 거셌다. 특히 ‘재선에 이은 차차기 대권 후보’를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 브랜드 마케팅’은 야권은 물론 여권 경쟁 후보들로부터 날선 공격의 대상이 됐다. 오 시장은 “두 행사 모두 서울을 좀더 효과적으로 알리고 보다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해명했다.

“재선을 포기하고플 정도로 답답하다”는 그에게 귀띔해 주고 싶은 비법이 있다. 바로 ‘감정이입’이다. 세계 최고 스노보드 선수들이 고궁과 초고층빌딩의 야경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묘기 대행진에 순간 ‘감탄’은 했을지언정, ‘아이리스’ 스타들이 펼쳐온 극적 긴장감에 이미 빠져든 시청자들처럼 ‘감동’을 하게 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내친김에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진정 서울을 세계에 알리고 싶으면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을 꾸미기에 앞서 용산참사 현장부터 말끔히 정리하라는 것이다. 1년이 다 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에 갇혀 있는 희생자들의 넋과 유족들의 고통이 유엔을 비롯해 전세계에 알려져 공분과 ‘인권침해국’이란 비웃음을 사고, 추기경까지 눈물로 호소하고 있건만,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오 시장은 사고 직후 잠깐 들렀다고 했을 뿐 지금껏 수수방관해 왔다.

아무리 멋진 인테리어에 진수성찬을 차려놓은들 한쪽에서 누군가 슬피 울고 있고 가장과 다른 가족들이 외면하거나 구박하고 있다면, 어떤 손님이 편안하겠으며 하물며 다시 오고 싶은 감동을 느끼겠는가. 사실 손님을 맞을 때 집안에 밝은 기운을 퍼지게 하는 것은 비법이 아니라 상식이다.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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