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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 황현산

등록 2009-12-11 20:45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 혹시라도 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2009년 1월20일, 용산4구역 철거현장에서, 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 몸을 떨며 시위를 하던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이 불에 타서 숨졌다. 사람들은 이를 참사라고 부르지만, 추운 겨울에 그 무리한 철거를 주도했던 사람들이나,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지닌 사람들이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정부는 정부가 간여할 일이 아니라고 했고, 고위 관료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무마할 계책을 적어 산하기관에 이메일로 보냈으며, 경찰은 거의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여 진압훈련을 했다. 그런데 사법부는? 검찰은 시위자들 가운데 불에 타 숨지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기소했으며, 판사들은 그들에게 이 참사의 책임을 물어 중형을 선고했다. 물론 행정부가 이들 철거민을 위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는 한 번 빈손으로 참사현장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이 참상 앞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인, 소설가, 비평가 192인이 각기 한 줄 선언을 써서 ‘작가선언’을 발표한 것은 지난 6월9일이다. 이 선언은 그달 말에 <이 사람의 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작가들은 7월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하고, 각종 매체에 릴레이 기고를 시작하여, 이 릴레이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이달 초에 발간된 용산참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도 이 진행중인 릴레이 시위와 기고활동의 보고서이다. 시를 쓸 사람은 시를 쓰고 산문을 쓸 사람은 산문을 썼다. 그리고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원들이 그림을 그렸다. 80년의 광주 이후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렇게 많은 글과 그림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높고도 활달한 감수성의 인간들이 용산에서 그 열정을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진한 슬픔과 가장 깊은 상처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 슬픔과 상처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자신의 슬픔이고 상처이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슬픔이고 상처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고, 해야 할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 참사가 잊히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주검이 땅에 묻히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제풀에 지치고, 릴레이를 하는 사람들의 힘이 바닥나고, 그래서 갑자기 국가의 품격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살라는 대로 살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져봤자 결국은 ‘저만 손해’라는 것을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아파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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