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금융팀장
고백부터 해야겠다. 뜬금없을지 모르나, 여의도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니, 언젠가부터 내게 여의도는 될 수만 있다면 자주 들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찍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여의도란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들이 즐비하게 몰려 있는, 이른바 ‘한국의 맨해튼’을 뜻한다. 판에 박은 듯 엇비슷하게 지어진 사각의 고층빌딩들. 점심시간이면 그 빌딩 사이를 뚫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마치 제복인 양 검정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 차림을 한 맵시있는 ‘금융맨’들. 분명 서로 다른 얼굴이건만 내겐 열이면 열 모두 똑같은 표정과 몸짓으로만 느껴지니, 이를 어쩌나. 현재 회사에서 맡고 있는 업무에 비춰봤을 때, 윗분들이 알면 큰일 날 소리다.
우리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여의도 금융가를 꼭 집어 치기 어린 투정을 부리는 데는 괜한 반항심이 크게 작용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핑계는 굳이 대고 싶다. ‘규제를 남김없이 풀어라, 그리하면 창조적인 선진금융의 세상이 열릴지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의도에 울려퍼지는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럴 게다. 반항심이 슬그머니 발동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다. 과연 여의도 금융맨들은 생각이나 몸짓에서 스스로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들일까? 그들의 창의력을 몸무게 재듯 잰다면, 어떤 수치가 나올까? 야박할지 모르나, 나 홀로 매겨본 점수는 꽤나 낮은 편이다.
누구나 창의력을 얘기하는 세상이다. 창조적 사고야말로 자본주의를 한 단계 더 앞으로 끌고 나갈 원동력이라고 한목소리로 떠든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나 창의력이란 단지 새롭고 기발하며 엉뚱한 생각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른’ 생각, 시쳇말로 프레임(틀)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창의력의 뼈대다. ‘현재’를 지배하는 주류 패러다임에 맞서, 또다른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일구어내는 일만이 진정 창의적인 행위다.
잠시 시곗바늘을 10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격동의 두 세기를 절반으로 가르던 1900년. 야심찬 이단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세상을 향해 대작 <돈의 철학>을 툭 던졌다. 지멜의 시야가 머무른 곳은 이미 일상의 삶 전부를 옥죄기 시작한 주인공 ‘돈’. 그런 일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조금이나마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새로운 ‘돈의 철학’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행간에 스며 있었음은 물론이다. 산업혁명 이후 거침없이 내달리기만 하던 당대의 자본주의가 잠시 숨을 고르며 ‘상처’를 치유하고, 어느 시대에 견줘서도 뒤지지 않는 온갖 혁신을 이뤄낼 수 있던 비밀 한자락도, 바로 새로운 돈의 철학이 숨쉴 수 있게 해준 여유 덕이다.
무대는 다시 여의도. 금융을 일러 흔히 현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심장이라고 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금융이야말로 창조적인 판타지를 활짝 꽃피울 수 있는 열린 무대요, 새로운 가치를 세상 구석구석에 퍼뜨릴 수 있는 기지란 뜻도 된다. 반대로, 낡은 철학을 바꾸지 않은 채, 창의력이란 단어를 고작 잔기술과 잔머리쯤으로 등치시키는 금융맨들의 행보가 큰 재앙을 불러왔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의도 고층빌딩 속에서 대형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수많은 금융맨들의 머릿속엔 과연 어떤 돈의 철학이 웅크리고 있을까? 돈의 철학, 돈의 물줄기가 바뀌면 세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2010년 새해엔 한국의 맨해튼 여의도가 진정 창의적이고 젊은 혁신가들이 맘껏 에너지를 토해내는 용광로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2010년판’ 돈의 철학을 신명나게 써내려갈 ‘엣지있는’ 여의도족을 손꼽아 기다린다.
최우성 금융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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