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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배고픈 미국의 추수감사절 / 이강국

등록 2009-12-02 22:05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11월 마지막주 목요일은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이다. 이는 원래 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축제를 연 데서 유래한다. 해마다 이때면 수많은 미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모이고 쇼핑몰들은 최대의 세일로 북적거린다. 안식년으로 연구차 컬럼비아대학을 방문하여 미국에 있는 필자도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현지에서 보는 미국인들의 표정은 금융위기로 인한 심각한 불황 탓인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금융위기는 특히 저소득층의 생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2주 전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8년 미국 전체 가구의 14.6%나 되는 약 1700만가구가 때때로 충분한 음식을 살 돈이 없어서 끼니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비율은 2007년까지 11%대를 유지했지만 지난해에는 위기의 충격과 함께 높아져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이 조사는 670만가구가 상당 기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으며, 부모들은 아이들만큼은 보호하려 하지만 110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심각한 굶주림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경제성장의 혜택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지만 경제불황의 괴로움은 언제 어디서나 아래로만 내려가는 법인지, 미국의 가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절대적 빈곤율은 2000년 이후 매년 상승하여 2008년에는 13.2%로 전해에 비해 0.7%포인트나 더 높아졌다. 1980년대 이후 소득분배는 급속히 악화했고 상대적 빈곤율도 17%를 넘어서서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4900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굶주림의 위험에 직면한다는 조사결과는 빈곤의 실상을 잘 보여주며, 미국인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무상급식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 의료보험 개혁 등 사회복지를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 속에서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경제회복으로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 자체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추수를 감사하며 인디언들과 또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는 청교도들의 순수한 나눔의 정신이 새삼 필요한 때일까.

배고픔조차 걱정해야 하는 살림살이의 어려움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끼니를 걱정하는 가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지만, 결식아동의 수만 해도 수십만에 달하는 현실이다. 보도를 보니, 무료급식을 받는 학생 수가 2007년 여름방학 때 약 27만명이었으나 금융위기 여파로 올해 여름방학에는 그보다 2배가 넘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시적으로 편성했던 541억원의 결식아동 지원예산조차 내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하여 올 겨울방학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점심을 굶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마치 2007년 빈곤층을 위한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하여 많은 비판을 받은 부시 정부를 보는 듯하다. 정부는 그 밖에도 교육예산이나 비정규직 지원, 긴급복지 관련 예산 등 민생과 복지를 위한 지출을 대폭 삭감하거나 폐지했다. 이는 물론 감세와 4대강 사업 등과 관련이 있을 터이니 더욱 안타까운 노릇이다.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한국 경제는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는 원조를 해주는 주요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반갑고 자랑스러운 소식들이다. 하지만 정부는 서민들의 생활이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그리고 점심을 거르는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도울 것인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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