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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 류동민

등록 2009-11-25 21:04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시끄럽다. 표면적으로는 국무총리로 지명된 분이 인사청문회도 거치기 전에 기다렸다는 듯 그 비효율성을 지적한 데서 비롯했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권력자의 뜻에서 비롯했음은 그야말로 삼척동자라도 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분’의 뜻을 받들어 원안 수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효율성이니 자족기능이니 하는 경제적 논리를 강조하면서, 원안 고수 입장에 대해서는 지역감정이나 정치공학 등의 정치논리라 비판한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총리가 한 시대를 풍미한 경제학 교과서의 지은이기도 하니, 어쨌든 그림은 제대로 나온다. 심지어 메이저 신문사의 어느 논설은 표를 구걸할 일이 없는 현직 대통령의 말은 정치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밖에 없고, 따라서 예비후보의 말보다 더 믿을 수 있다, 아니 믿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내세운다.(아마 표를 의식할 필요 없는 종신독재자의 말은 곧 성경 말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일 흘러나오는 예상 수정안의 내용은 이를테면 헌재의 결정을 패러디하자면 ‘관습법’상 서울에 있어야 할 서울대학교의 제2캠퍼스를 만든다느니, 기업들에 특혜를 주어 이주하게 만든다느니 하는 등속의 것들이다. 이쯤 되면 어차피 행정수도도 아닐 바에야 행정관청이 옮기는 것과 특목고까지 끼워넣은 명문학교와 기업, 연구소 등이 패키지로 옮기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것 사이에 경제적 효율성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예의 경제적 효율성 논리의 중요한 전제는 두 가지인바, 첫째 경제와 정치를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 ‘네가 하는 건 불륜(정치)이고 내가 하는 건 로맨스(경제)’라는 것이다. 나도 명색이 경제학자이므로 경제가 불륜이 아니라는 건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나, 경제와 정치를 칼로 두부 자르듯 떼어낼 수 있다는 발상은 아마도 순수함을 가장한 불순한 논리일 터이고 최대한 동정적으로 이해하자면 어리석음의 탓이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인정투쟁이라는 헤겔철학의 개념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설명하고자 했다. 인간은 누구나 남들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정치의 본질 또한 무엇인가 활동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인정받고, 다시 그 인정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의 발언권, 즉 권력을 확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를테면 정권이 바뀌고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완장질’도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세종시 아니 ‘노무현시’를 새로운 그 무엇, 아니 ‘이명박시’로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각종 분란이 지닌 철학적 근거를 이해할 수 있을 법도 하다.

문제는 이런 인정욕구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욕구를 힘으로 짓밟고자 할 때 생겨난다.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허락하라”는 경구는 그래서 거꾸로 읽으면,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이미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다시 예의 인정투쟁에 대입해 보면, 다른 이들의 인정욕구를 허용하지 않는 일방적인 인정욕구의 표출과 권력을 무기로 하는 그것의 관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문제의 본질은 원안의 효율성을 경제(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외쳐왔던 소통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즉,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그러니 벽에다 대고라도 외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이 표현은 유종일 교수의 글에서 빌려온 것임을 밝혀 둔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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