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른바 ‘강남 3구’ 중 하나에 살던 우리 가족이 서울시내 다른 구로 이사한 게 지난 7월이다. 사실 그 이사로 우리가 누리는 공공서비스가 크게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사 가 봐야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같은 서울시민 아닌가? 그런데 이사를 하자마자, 임신중이던 아내가 누리는 의료서비스가 달라졌다. 이전 보건소에서는 임신부에게 무료로 제공하던 몇 가지 서비스가 사라졌다. 출산축하금 액수도 5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었다.
이런 차이가 출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아이는 강남보다 재정이 어려운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 강남구의 유치원 및 초·중·고교 지원금 예산은 올해 137억원이다. 그런데 금천구는 15억원, 종로구는 23억원, 서대문구는 26억원이다. 성인이 지역 교육기관에서 배움을 계속하려고 하더라도, 더 비싸고 질이 낮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강남구의 올해 평생교육 및 직업교육 지원금 예산은 200억원인데, 동작구는 2억원에 그친다. 도봉구는 아예 없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주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지금 생활과 밀접한 교육,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 상당 부분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고 있다. 예산의 불균형은 삶의 질도 불균형하게 만든다. 삶의 질 때문에 집값과 땅값이 변동하면서 불균형은 더 커진다. 이 불균형은 해마다 누적될 것이다.
이런 불균형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재산세다. 재산세는 기본적으로 구에서 걷은 몫을 해당 구에서 쓰도록 되어 있다. 올해 서울에서 부과된 재산세를 보면, 많은 강남구와 가장 적은 구 사이에 15배가량 차이가 난다. 땅값 집값이 비싼 동네일수록 유치원도 학교도 보건소도 더 좋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행히 서울시는 2008년부터 재산세 공동과세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올해 구세인 재산세 가운데 45%를 서울시에서 걷어 25개 구에 골고루 나누어준다. 그래서 구 사이의 재산세 세입 격차는 약 5배로 완화됐다.
재산세 수입이 많은 구는 불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12일 헌법재판소에서는 강남 3구 등이 낸 헌법소원 공개변론이 열린다. 이런 조처가 지방자치권한을 침해한 것인지를 가리는 내용이다.
문득 ‘책임감 있는 부’라는 단체가 떠올랐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를 추진할 때,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단체 가운데 하나다. 단체의 회원들은 바로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같은 당대 최고 부자들이었다. 백만장자들이 모여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만들지 마라’고 외친 것이다. 번 돈을 좋은 데 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게 더 근본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내가 낸 세금은 내 지역에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딱한 일이다. 세금은 요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낸 만큼 서비스를 받는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접어야 한다. 경찰도 도로도 보건소도 도서관도 세금 많이 낸 사람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가?
강남 주민들이 ‘재산세를 다른 지역과 더 골고루 나누어 사용하도록 하라’고 구청에 건의하는 상상을 해 본다. 마침 맹정주 강남구청장도 ‘존경 받는 강남’을 목표로 구정을 펼치고 있으니 궁합이 잘 맞는다. 기왕 내는 세금인데, 그게 달동네 신생아의 분유 값으로 사용되고 형편이 어려운 임신부의 병원비로 사용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더 길게 보아, 집값 올라서 재산세만 더 내도 자연스레 선행을 한 게 되고 존경도 받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강남 주민들이 ‘재산세를 다른 지역과 더 골고루 나누어 사용하도록 하라’고 구청에 건의하는 상상을 해 본다. 마침 맹정주 강남구청장도 ‘존경 받는 강남’을 목표로 구정을 펼치고 있으니 궁합이 잘 맞는다. 기왕 내는 세금인데, 그게 달동네 신생아의 분유 값으로 사용되고 형편이 어려운 임신부의 병원비로 사용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더 길게 보아, 집값 올라서 재산세만 더 내도 자연스레 선행을 한 게 되고 존경도 받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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